김준 서울대 지역시스템공학과 교수가 ‘온고지신 과학자’라고 추천한 전영신 국립기상연구소 황사연구과장이 이번엔 ‘역할 모델로 삼은 천문학자’라며 안영숙 한국천문연구원 창의선도과학본부 책임연구원을 소개한다.
2009년, 그땐 나 혼자 기상 역사를 연구했다. 비슷한 연구 분야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싶지만 팀을 꾸리는 일조차 막막했다. 역사 연구가 활발한 천문학 분야가 내심 부러웠다. 당시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열린 ‘한국의 전통 천문의기 워크숍’에 참석한 이유도, 고백하자면 호기심 반 염탐 반이었던 것 같다.
처음엔 반나절만 들어보자고 생각했는데 결국 하루 종일 그 곳에 있었다. 발표된 논문들은 문외한인 내게도 꽤 흥미로웠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ㆍ국보 제228호)를 3차원(3D) 스캐닝 기술로 디지털화한 연구 결과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태조 4년에 만들어졌으며 돌에 새겨진 것으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별자리 지도다. 하지만 어두운 흑요암에 지도를 그린 데다 마모도 심해 가까이서 봐도 표면의 내용을 알아보기 힘들다. 지도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3D 스캐닝 기술을 보면서 천문 역사 연구가 옛 문헌을 뒤적이는 데 그치는 게 아님을 알았다.
관심 밖에 있던 천문 역사를 이 정도로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안영숙(57) 한국천문연구원 창의선도과학본부 책임연구원이다. ‘천문 역사 연구 1세대’로 1978년 천문연구원에 입사한 그의 본래 업무는 달력을 만드는 일이다. 시간을 다루다 보니 여러 사람들의 문의 전화도 많이 받았다. 자연스럽게 옛 사람들은 시간을 어떻게 계산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1998년 충북대 천문우주과학과 박사 과정에 진학해 조선시대 달력 역법으로 학위를 받았다.
지금이야 많이 활발해졌지만 그때만 해도 천문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아는 사람 몇몇이 모여 공부를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2008년 천문연구원에 고천문 연구 그룹이 생기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그는 그룹장을 맡아 여러 연구를 진행했는데,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디지털화한 것도 성과 중 하나다. 고천문 연구 그룹은 이달 1일 있은 조직 개편에서 창의선도과학본부로 통합됐다.
천문학하면 우주나 망원경을 먼저 떠올린다. 기상 역사도 그렇지만 천문 역사 역시 인기 분야는 아니다. 가르치는 곳도 국내에선 충북대가 유일하다고 알고 있다. 연구 실적이 곧바로 나오는 게 아니니 연구비를 받기도 수월치 않다. 그럼에도 그가 이 일을 놓지 않는 것은 뿌리를 찾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대들보가 제대로 놓여있는지 확인도 않고 집을 지었다간 폭삭 주저앉기 쉽다.
이젠 내게도 팀이 생겼다. 기상 역사팀을 꾸리기 전 고천문 연구 그룹은 어떻게 운영하는지 그의 조언을 들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여성 과학자, 같은 비인기 학문을 연구하는 선배로서 안 책임연구원은 내 역할 모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리=변태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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