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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국인의 노후준비는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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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국인의 노후준비는 충분한가

입력
2012.06.1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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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는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다가 학교 마치고 철이 들어 자신의 가계를 꾸리게 되면 한 평생 끊이지 않는 경제적 고민에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숙명이라 한다. 들 돈은 잘 모르지만 나갈 돈은 따박따박 생기니 이를 해결하는 것만 해도 이미 골치가 아픈 일이다. 그래서 소위 인류의 집단지성이 오랜 역사를 통해 만들어낸 산물이 금융시스템이다. 내가 오늘 쓰고 남는 것을 모자라는 사람에게 빌려주고, 후일 내가 필요할 때 이자라는 덤까지 쳐서 고이 돌려 받는 것이 금융의 핵심이다.

경제학, 그 중에서도 금융경제학의 가장 큰 화두는 바로 이 금융시스템이 어떻게 개인의 행복에 이바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의 원칙이 금과옥조처럼 받들어지고 있는데, 그 중 첫째가 평생소득-소비가설이다. 이에 따르면 개인차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사람은 젊어서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저축하고 노년이 되어서는 그 저축액을 찾아 은퇴 이후 생활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분산투자의 원칙이다. 저축의 투자처를 결정함에 있어 여러 자산에 골고루 나누어 담는 방식을 택해 노후소득의 안정성을 도모하자는 취지인 것이다. 요컨대 개인이 이와 같은 원칙들을 지킨다면 충분하지는 않지만 저마다 최선의 노후대비를 하는 셈이 될 것이며, 이것이 바로 경제학이 가르쳐준 삶의 지혜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유감스럽게도 한국인의 보편적 가계 소비, 저축 및 자산배분 구조는 경제학 이론이 제시하고 있는 바와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 중 첫째가 노후저축의 양극화에 따른 저소득계층의 과소저축 현상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소득양극화는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이는 다시 노후저축의 양극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노후저축 측면에서는 간극이 더 크게 벌어진다는 점이다. 일례로 월 소득이 100만원인 A와 200만원인 B를 비교해보자. 만약 A는 90만원을 다 써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B는 150만원을 지출한다고 하면, A는 저축이 10만원, B는 저축이 50만원인 되는 셈이다. 소득은 B가 A의 두 배가 되지만, 저축은 5배가 많은 셈이 된다.

두 번째로는 주택자산에 대한 지나친 편중 현상이다.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 80%가 주택에 묶여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산으로서의 부동산은 유동성이 부족해 노후생활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현금흐름을 제공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또한 지난 수 십 년 간의 부동산 불패신화가 지속될 수 있는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예전과 같은 고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더욱이 주택자산보유자 중 많은 수가 부채를 통해 주택구입자금을 조달하였다는 점에서 가계부채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리해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노후저축은 양적 측면 뿐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도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다 구체적으로, 노후저축과 관련해 저소득층은 노후저축의 절대량이 부족하며, 노후저축이 충분한 가계라도 주택에 편중된 자산배분구조는 노후저축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원칙적으로 저축은 개인의의 책임하에 선택할 문제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사회통합과 안정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 된다면 정부가 나서야 할 문제이다. 국민연금이 있기는 하지민 이는 근본적으로 세대 간 소득재분배의 수단일 뿐이며, 노후저축의 과소문제는 저소득층에서 더 심각한 형편이다. 따라서 소요 재원 충당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저소득 노년층을 위한 사회 안전망 프로그램의 확충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또한 주택 자산의 편중 현상으로 인한 노년층의 유동성 위험을 줄여주기 위해 역모기지와 같은 금융상품의 보급이 보다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여하튼 우리나라 국민의 노후저축과 관련된 제반 현안을 인식하고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하려는 정책당국의 노력이 요구되는 상황임은 분명해 보인다.

허석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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