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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찰칵'… "사진이 또 다른 눈 뜨게 해 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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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찰칵'… "사진이 또 다른 눈 뜨게 해 줬어요"

입력
2012.06.1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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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 이름이 ‘누에다리’에요. 고치처럼 지붕이 둥글게 덮여 있어요. 건너면서 옆을 보면 그물 같은 기둥 사이로 다리 밑을 가로질러가는 차가 보여요.”

“여기 서서 이런 각도로 찍으면 그 풍경이 들어올까?”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 몽마르뜨 공원. 전맹(全盲ㆍ시각이 0으로 빛 지각을 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인 강수원(62)씨가 자신의 팔을 이끌며 주변 이야기를 들려주던 김도연(19·여)씨를 멈춰 세우더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뒤따라가던 부인 채승님(61·여)씨가 “나도 찍어줘요”라고 부르자 강씨가 돌아섰다. “여기에요, 여기”라고 말하는 채씨의 목소리를 향해 강씨가 초점을 맞췄다. 찰칵, 셔터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강씨는 “맨눈에는 뿌옇게 느껴지던 것들을 카메라에 담아 가까이 들여다보면 자세히 드러나기도 한다”며 “사진이 또 다른 눈을 뜨게 해준다”고 말했다.

이 날은 상명대 영상ㆍ미디어연구소가 주관하고 (사)마음으로보는세상이 주최하는 시각장애인 사진 교육 프로그램 ‘2012 마음으로 보는 세상’의 첫 출사(出寫).

올해 6회째인 이 행사에 시각장애인 12명이 참가했고, 이들을 돕기 위해 상명대 사진ㆍ영상미디어전공 1학년 학생 12명도 나섰다.

생애 처음 카메라를 만지는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전맹인 박상수(55ㆍ여)씨는 “관심조차 없었는데 나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얘기에 큰 호기심이 생겼다”며 “출사 나오기 전 집 옥상에 심은 고추를 손으로 만져가며 사진 찍기 연습을 했는데 무척 떨린다”고 말했다. 3급 약시인 김원일(45)씨는 “세 명의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직접 찍어주고 싶어 나왔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에 몇 차례 참가한 경험있는 시각장애인들은 “사진을 통해 새로운 삶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로 네 번째 참가한 전맹 박규민(35)씨는 “사진을 찍을수록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긴다”며 “올해는 여러 장이 하나의 얘기로 이어지는 사진을 찍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참가한 1급 약시 김복자(56ㆍ여)씨는 “하늘을 좋아하는데 혼자서는 밤에 보름달과 별 등을 찍으러 나갈 엄두가 안 났다”며 “올해는 멘토와 함께 출사를 나가 돗자리에 누워 밤 하늘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특히 1급 약시와 지체 장애 때문에 휠체어와 동행인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윤성미(24·여)씨를 밖으로 불러낸 것도 사진이었다. 지난해는 지인의 손에 이끌려 처음 참가한 윤씨는 올해는 수업 참여를 위해 먼저 나섰다. 윤씨의 어머니 장귀순(49ㆍ여)씨는 “방에서 인터넷만 하던 딸이 사진 수업과 출사 있는 날이면 알아서 스스로 외출 준비를 할 정도”라며 “사진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시각장애인 뿐만 아니라 사진을 전공하는 멘토 학생들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안겨줬다. 도수미(19ㆍ여)씨는 “시각장애인에게 사진 촬영은 대화와 상상력으로 하는 것이다 보니 사진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을 벗어난 새로운 사진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도연(19ㆍ여)씨는 “시각장애인의 의욕과 열정이 뜨거워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며 “서로 도우면서 만들어내는 사진은 어떨지 기대 된다”고 말했다.

행사를 기획한 상명대 영상ㆍ미디어연구소장 양종훈 교수는 “시각장애인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영역에 도전하며 자신감을 갖게 돕고 싶었다”며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에 대해 갖는 편견을 깨는 데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들이 찍은 작품들은 6개월 교육 기간이 마무리되는 11월 사진집과 함께 전시회를 통해 일반인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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