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문 수 늘리려 동료끼리 이름 끼워넣어 줘… '저자 膳物'이 관행
지방 사립대 의대 교수인 A(50)씨가 현재 소속 대학병원으로 직장을 옮긴 건 2007년. 병원은 임상교수(환자 치료를 주로 맡는 임시교수)였던 그를 정교수로 채용하려 했지만 부족한 논문 실적이 문제였다. 그래서 병원은 당시 전임의(펠로우) 한 명이 쓴 심장질환 관련 연구논문의 제1저자로 A씨의 이름을 올려줬다. 저자 자격(authorship)이 없는 사람의 이름을 논문에 슬쩍 끼워 넣은 셈이다. 논문은 국제학술지인 에 실렸고, 이듬해 그는 무난히 교수로 임용됐다.
이 부정행위가 더욱 심각한 것은 병원 차원에서 이뤄졌으며, 의대 전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관행이라는 사실이다. 후배 교수들이 논문을 발표할 때 알아서 선배 교수나 지도교수의 이름을 저자 명단에 나눠 넣어주는 이른바 '선물 저자' 관습이다. 한 대학병원 전문의는 "수백 편의 논문에 이름을 포함시킨 의대 원로급 교수가 실제 참여하거나 기여한 논문은 수십 편에 불과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논문 수를 늘리려고 동료 교수들끼리 각자 논문에 서로 이름을 교환해 넣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학계에서는 논문 대필(代筆)도 성행한다. 2010년 교수신문과 한 지상파 방송 시사프로그램이 공동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의ㆍ약학 분야의 경우 시간강사 중 절반 가량(46.7%)이 교수에게서 논문 대필을 요구받은 적이 있다고 답해 다른 분야를 압도했다.
논문 수가 인력 배분을 위한 평가기준이 되기 때문에 대필이나 저자 선물로 교수 실적을 늘리는 일은 '상부상조'쯤으로 통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련의(인턴) 과정을 거친 K(32)씨는 "전공의(레지던트) 1년차는 정부가 일괄 선발한 뒤 각 병원에 할당하는 방식인데, 교수의 논문 수가 많을수록 데려올 수 있는 전공의가 많아진다"고 말했다. 연구부정을 학과나 전공분야를 위한 일처럼 여기는 것이다. 도제관계가 엄격한 의대의 특성까지 결합돼 이런 부정을 보고 배운 학생들은 나중에 교수가 돼 똑 같은 일을 되풀이하면서도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현재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는 강수경 수의대 교수의 사례도 연구부정이 얼마나 오랫동안 제지 없이 지속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산대 의대에서 성체 줄기세포를 연구하다 2008년 9월 서울대 수의대로 옮겨온 강 교수는 2006년부터 최근까지 국제학술지 10곳에 14편의 조작된 논문을 발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강 교수가 부산대 시절부터 논문 관리에 엄격한 편이 아니라는 평가를 들어왔다"고 말했다.
특정 학과나 분야 전체가 이렇게 집단적 윤리불감증을 보이는 경향은 응용과학 분야일수록 심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의대가 전형적인데, 임상의사의 경우 진료를 중시하기 때문에 논문 쓰는 일 자체를 하찮게 보곤 한다. 줄기세포 연구만 해도 궁극적으로 불치병을 치료하는 임상적용이 중시되는 만큼 연구과정의 오류를 묵인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과학정책학을 전공한 서울 지역 사립대 한 교수는 "공학 분야에선 표절도 심한데, 앞서 나온 논문의 선행 연구 부분을 베끼는 것에 대해선 죄라고도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연구윤리 수준이 낮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서울대 공대생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선 "실험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한 번 이상 표절을 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82명에 이르기도 했다.
윤리성이 떨어지기로는 체육계도 비슷하다. 서울 B대 체육학과의 C교수는 "운동선수 출신들의 논문은 70~80% 대필로 봐도 무방하다"며 "논문을 쓸 때 짜깁기라도 해야 교수가 될 수 있는데 그것마저 하기 어려우니 대필이 성행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운동과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선수들의 특성을 감안해 표절이나 대필 관행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선수 출신은 논문을 대강 써도 된다'는 건 아주 위험한 논리"라며 "선수 출신 중 훌륭한 체육학자가 많은 외국에선 통하지 않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분야를 막론하고 교수가 실험실을 어떻게 운영하고 교육시키느냐에 따라 실험실 전체가 연구윤리에 둔감해지기도 한다. 서울 사립대에서 생명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유학 중인 한 연구자는 "실험노트를 쓰는 게 기본이지만 교수가 데이터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면 안 지키게 된다. 학생 중 절반은 노트를 작성하지 않는다.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데이터를 확인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박상욱 숭실대 행정학부 교수도 서울대 연구진실성위 조사를 받고 있는 강경선 수의대 교수의 예를 들며 지도교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그는 "논문을 100% 책임지는 교신저자인 강 교수가 (문제된 논문의) 제1저자가 대학원생이어서 자기는 모르겠다고 한다는 것은 학자도 아니요, 선생도 아니라고 하는 꼴"이라며 "연구윤리와 데이터?엄밀성도 지도교수가 가르치면서 문화를 형성하고 전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라고 해서 윤리적으로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들 그렇다'고 배우고 자란 이들은 연구하는 방법만 아니라 부정을 저지르는 방법까지 이어가게 된다. 서울 사립대의 한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체계적 연구윤리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던 세대가 현재 학계 주류를 이루고, 연구부정행위들을 학생들이 다시 배우고 답습하면서 연구부정이 좀체 줄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 승진·연봉·급여 등에 영향 탓 논문 실적 집착… 파벌·온정주의도 영향
7년 전 '황우석 쇼크'가 남긴 교훈에도 불구하고 연구 부정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급속히 발전한 연구수준만큼 윤리의식과 교육이 따르지 못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지만, 양적 성과에 집착하는 단기 실적주의와 자기 사람을 챙기는 파벌주의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
연구 부정 중 가장 흔한 유형은 논문 중복게재와 부당한 논문저자 표시다. 채용과 승진, 연구비 수주가 정량평가(논문 편수)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일단 논문 수를 부풀리는 데 급급한 것이다. 박기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학평가 때 교수 1인당 논문 편수를 보기 때문에 대학도 논문을 많이 쏟아내는 교수를 선호한다"며 "논문 편수로 신임교수 채용이나 승진이 이뤄지는 것도 교수들에게 압박이 된다"고 말했다.
2006년 서울대가 연구실적과 강의를 평가해 연구비를 차등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 상당수 대학들이 연구실적에 따라 연봉을 차등 지급하기 때문에 논문 편수에 대한 압박은 심해졌다. 황은성 한국과학학술지편집인협회 출판윤리위원장(서울시립대 생명과학과 교수)도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승진할 때(보통 임용 5년 후) 경쟁이 특히 치열해지는데 외국의 경우 3~5년의 연구시간을 주고 완성도 있는 논문을 주문하는 데 반해 한국은 1년 단위로 써야 할 논문 편수를 제시한다"며 "하나의 연구결과를 여러 개로 쪼개 논문을 여럿 제출하거나 데이터 조작이 일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고질적인 학계의 파벌문화도 연구 부정을 부추긴다. 연구에 큰 기여가 없는 교수가 공동저자에 이름을 올려달라고 요구해도 '교수에 잘 보여야 살아남는' 학계 분위기 때문에 거부하지 못한다. 대학원생 A씨는 "한 교수 밑에 들어가면 평생 같이 가는 구조라 밉보이면 출세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며 "논문에 교수 이름을 같이 넣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부당한 저자표시 문제는 실험이 많아 단독 연구가 힘든 이공계 논문의 경우 공적에 대한 기준이 애매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엄격하게 보면 단순한 아이디어나 실험재료, 조언, 연구비 제공만으로는 공저자에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박상욱 숭실대 행정학부 교수는 "연구지원자 접촉이나 연구비 수주, 장비 제공 등 물질적 후원도 모두 기여로 생각해서 공동저자로 들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연구 부정이 드러났을 때 잘못된 대처가 연구부정을 만연하게 만든다. 제보를 뭉개거나 조사를 거치고도 제대로 징계하지 않는 온정적 대처는 '부정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그릇된 교육효과를 낳는다. 서울대 수의대 우희종 교수는 "황우석 박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논문을 조작한 미국 벨연구소 물리학자 얀 헨드릭 쇤은 학계는 물론 사회에서 추방됐지만 황 박사는 여전히 민간연구소에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며 "연구조작, 표절에 관대한 우리 사회 분위기가 제2의 황우석 사태를 부른다"고 밝혔다. 우 교수는 "자기 사람을 임용하면 윤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더라도 눈 감아주는 교수사회의 파벌과 온정주의가 연구부정을 키우는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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