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피임약(응급피임약)을 비타민 먹듯이 먹지 않는다. 여성은 적절히 선택할 수 있다"(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 본부장)
"사후피임약은 피임실패율이 가장 높다. 피임약 처방을 건강보험이 되게 해서 산부인과 의사들을 제대로 이용하게 해야 한다."(최안나 대한산부인과학회 위원)
15일 서울 여의도 한국화재보험협회 강당에서 열린 식품의약품안전청 주최의 피임제 재분류안에 대한 공청회. 사회적 논란을 반영하듯 의ㆍ약단체와 종교계 인사, 시민단체 관계자 등 수백명이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찼다. 더욱이 각 단체들이 시작 전부터 저마다 피켓을 들고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는 등 신경전도 치열했다.
식약청은 현재 의사 처방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는 사후피임약을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일반피임약으로,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사전피임약을 처방이 필요한 전문약으로 바꾸는 방안을 지난 7일 발표했었다. 이후 각계에서 일어난 뜨거운 논란이 이날 그대로 이어졌다.
김대업 대한약사회 부회장은 "피임 진료 기록을 남기기 싫어하는 여성들의 특성 때문에 사후피임약 처방전을 남자가 받아오기도 하는 등 현재도 제대로 된 처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우리 국민들과 여성들은 우매하지 않으며 약사들도 피임약의 안전관리에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약을 모두 일반약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최안나 대한산부인과학회 위원은 "사후피임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데 불안감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호르몬 문제 등 피임에 가장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은 의사"라며 전부 전문약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했다. 최 위원은 "피임진료를 하라고 있는 것이 산부인과 의사이며, 시민단체들은 의사들이 잘 하는지 감시해달라, 저희는 낙태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 본부장은 "사전피임약을 전문약으로 전환하면 비용이 3~4배 늘어난다"며 "사전피임약의 안전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와서 전문약으로 전환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최안나 위원은 "피임진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비용은 줄어든다"며 "낙태가 이렇게 문제되고 있는데 정부는 돈(건강보험 재정)을 왜 투입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인숙 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일일이 처방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여성에게 피임약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두 피임약의 일반약 지정 방안을 지지했다.
사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이 성문란을 불러 일으키고 오히려 낙태율을 증가시키는지에 대해서도 치열한 논박이 오갔다.
김현철 낙태반대운동연합회장은 "지금도 남자들이 본인의 피임책임을 회피하고 여자들에게 사후피임약 복용을 권유하는 현상이 있다"며 "외국의 경우, 사후피임약 판매가 2배 늘어나자 낙태율도 2배 증가하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한 달에 한번 이상 사용하면 피임 실패 가능성이 높은데, 이 때문에 사후피임약 판매 증가가 낙태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승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책위원은 "피임약을 성문란과 연결하는 것은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강인숙 한국천주교 주교회 생명위원은 "교황청은 사후피임약 보급을 낙태약과 같은 악행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며 "정부의 사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은 초기 인간 생명을 경시하고 침해하는 것"이라고 종교계 입장을 정했다.
식약청은 피임약 재분류가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해 이뤄졌다고 밝히면서도, 피임약 정책은 여러 사회적 고려도 필요한 만큼 공청회의 의견을 반영해 7월 중 피임약 재분류 방안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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