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다가 날아오는 축구공에 맞아 기절한 적이 있다. 부지불식간에 맹렬한 속도로 날아왔을 그것이 설마 떨어져도 튀는 공이랴, 돌이나 폭탄쯤으로 알았던 나는 그로부터 깊은 트라우마가 생겨 축구공이라면 질색 팔색이게 되었다.
물론 모든 공 앞에 쩔쩔이었다는 건 아니다. 체육 시간에 점수를 받기 위해 배구공으로 리시브를 하거나 농구공으로 자유투를 넣어야 할 때는 썩 괜찮았다. 유독 드리블을 하거나 슛을 날리려는 시늉 속의 축구 실습 때만 발 동동이던 나니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죽자 살자 왜 이 공 하나에 목숨들을 거는 걸까. 이게 대체 뭐라고. 혀나 끌끌 찼지 도통 축구 경기에 관심이 없던 나는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축구의 신세계를 알아버렸다. 발로 해서 축구인 줄 알았더니만 그게 글쎄 예술이더란 말이다. 나아가 전술이며 전쟁이라는 희극이자 비극.
요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피곤해 쩔어, 그게 대세라 일이 많아 그런 줄 알았는데 이게 다 축구 때문임을 순순히 밝히는 바다. 한국이 뛰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다 챙겨 보냐는 게 엄마의 푸념이라지만 나라마다 축구의 스타일이 다 다르니 어찌 잠들고 마려나. 우르르 모두가 공을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 저마다 자기의 위치에서 공을 기다리는 여유, 아 그보다 조각 미남 선수들을 어째. 플레이도 좋고 몸도 좋고, 아 땀나는 여름이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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