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통령 선거와 그리스의 총선이 함께 치러진 지난달 6일 세계의 시선은 긴축 대신 성장을 내세운 프랑수아 올랑드의 프랑스 대통령 당선 여부에 쏠려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가 총선 후 정부 구성에 실패하자 '그렉시트(Grexitㆍ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공포가 유럽 재정위기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이제 세계는 재정위기의 분수령이 될 17일 그리스 재총선을 긴장 속에서 지켜보고 있다.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대책을 서두르면서 그리스를 달랠 유화책도 마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총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후폭풍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1당이 되면 구제금융 협약이 파기되고 외부의 돈줄이 끊길 수 있다. 이 경우 그리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 탈퇴하고 옛 통화 드라크마화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 유로존 잔류를 주장하는 신민당이 1당을 차지해도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 연정 구성 과정에서 혼란이 재연될 수 있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각국은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5일 주요20개국(G20) 등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유동성 공급과 공조 채비에 나섰다고 전했다.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은 14일 1,000억파운드(약 181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머빈 킹 영국중앙은행 총재는 "수주 안에 기업과 가계에 장기저리 대출을 공급하기로 했다"며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기 때문에 폭풍이 닥치기 전에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정부 역시 "행동할 준비가 돼있다"고 했으며 일본중앙은행은 재정 안정에 최우선을 두겠다고 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17일 그리스 총선 직후 전화 회의를 할 예정이다. 유로존의 관계자는 "시리자가 압도적으로 승리하면 그리스에서 급격한 자금이탈(뱅크런)이 일어날 수 있다"며 "인터넷뱅킹이 있기 때문에 월요일 아침이 오기 전 뱅크런이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18, 19일 멕시코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도 그리스 총선 후속 대책이 주요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 재총선의 파급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각국 지도자들은 이례적으로 자신의 뜻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올랑드 대통령은 13일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으려면 구제금융 협약을 지켜야 한다"며 "협약을 존중하지 않는 선거 결과가 나올 경우 그리스가 유로존에 더 이상 남기를 바라지 않는 나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리스의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그리스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리스에 줄 당근도 등장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연합(EU)이 그리스 구제금융 조건의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15일 전했다. 조건 완화에는 구제금융의 금리 인하와 상환기간 연장, 공공부문 투자에 대한 유럽개발은행의 지원 등이 포함되는데 이는 긴축을 지지하는 신민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다. EU의 관계자는 "신민당이 승리하면 그리스인의 삶을 더 낫게 할 조치들을 꺼낼 수 있다"고 FT에 말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그리스가 유로존을 이탈해도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보다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14일 보도했다. 리먼 사태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지만 그리스 사태는 이미 몇 달 전부터 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EU 집행위는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시 자본 흐름 통제 가능성 등을 검토했다고 시인했으며 외국계 기업들도 그리스에서 자금회수를 서둘러왔다. 마크 그레고리 언스트앤영 파트너는 "지난해 말부터 화폐 전환 등 그리스 위기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여러 기업에 조언을 하고 있다"고 NYT에 말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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