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모/이승욱 신희경 김은산 지음 /문학동네 발행ㆍ312쪽ㆍ1만4000원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한국의 교육열, 이게 사람 잡기 시작한 지도 한참 됐다. 밥은 굶어도 자식은 가르쳐서 잘 살게 하겠다는 부모들의 열망이 전쟁과 가난에 쓰러진 나라를 초스피드로 일으켜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한국 교육은 '미쳤다.' 아이도 부모도 힘들다. 성적과 입시 경쟁에 짓눌려 아이들은 시들고, 부모는 사교육비 대느라 허리가 부러진다. 부부는 아이 성적 때문에 싸우고, 그런 부모를 보면서 아이는 더욱 단단히 마음의 문을 잠가버린다. 공부하라는 닦달에 시달리던 고등학생이 엄마를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까지 벌어졌다. '미친 교육'이 아이들을, 가정을, 우리 사회를 잡아 먹는 형국이다.
<대한민국 부모> 는 상담실을 찾아온 아이들과 부모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실태를 고발한다. 미친 교육이 아이들 인생을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 그와 동시에 가정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실제 상담 사례들이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친 교육 때문에 중병 걸린 한국 가정의 실태 보고서라 할 만한 이 책은 심리치료와 가족 상담 일을 하는 두 명의 심리학자와, 하자작업장학교에서 교사로 아이들을 만났던 인문학자가 함께 썼다. 대한민국>
제목에 '부모'가 들어간 것은 아이들을 그런 지옥으로 몰아 넣는 부모들의 맹성을 촉구하는 뜻으로 보인다. 사실 근본적 원인을 따지자면 교육 정책을 규탄해야겠지만, '애들이 안 됐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모들 책임도 크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아이들의 미래가 없다, 부모가 달라져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책을 썼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아이들이 산 채로 죽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 보고 꿈을 향해 나아갈 기회를 뺏긴 채, 공부 기계가 되어 버린 아이들이 겪는 고통과 거기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이 책의 첫 장을 차지한다. 숨 막히는 지옥을 탈출하기 위해 '죽거나 죽이거나 미치는'아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다. 엄마를 '미친 년'이라 부르고 아버지를 'X같은 새끼'라고 욕하는 아이들에게 충격을 받는 것도 잠시, 이 험한 말이 실은 비명임을 깨닫게 된다.
전체 5장 중 나머지 4개 장은 부모들의 병증과 책임을 말한다. 아이 교육에 올인하며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고 '믿는' 엄마들의 강박증, 그런 아내에게 왜 자식 교육에 좀 더 신경 쓰지 않느냐는 구박을 받으며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아버지, 그 바람에 부부 사이가 틀어지고 껍데기만 남은 가정을 보여준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라고 변명하는 부모들에게 저자들은 묻는다. 그게 진정 아이를 위한 것인가, 그렇게 해서 당신 뜻대로 잘 자란 아이가 과연 행복할까, 당신은 행복할까. 답은 이렇다. 아이에겐 아이만의 인생이 있음을 받아들여라, 자녀로부터 독립해 부모 자신의 삶을 찾아라, 그래야 아이도 부모도 행복할 수 있다.
이쯤에서 죄책감에 시달릴 부모들에게, 이 책은 더 근본적인 처방을 제시한다. 개인 탓이 아니라고, 이 모든 비극의 뿌리는 잘못된 제도와 사회 구조이니, 거기에 맞서 싸우자고 말한다. 지옥을 묵인하는 방조자로 남지 말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문제를 제기하고 고쳐 나가자고 강조한다. 하다 못해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매체를 통해서라도 의견을 밝히고, 학부모 모임에 나가서 발언하고, 야간자율학습이나 0교시 수업을 강요하는 학교에 항의하라고 말한다.
'분노하라, 싸워라, 연대하라'쯤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런 결론은 정치적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육 정책을 바꾸는 것은 결국 정치니까. 부모들이 망설이는 사이, 지금도 아이들이 죽어간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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