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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1F/B1(일층, 지하 일층)' 여전한 상상력, 더 넓어진 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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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1F/B1(일층, 지하 일층)' 여전한 상상력, 더 넓어진 시야

입력
2012.06.1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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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F/B1(일층, 지하 일층) /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발행·308쪽·1만2,000원

여느 작가들이 현실에 발 붙인 채 핍진하고 소설적인 이야기를 찾느라 분투할 때, 김중혁(41)씨는 상상의 힘으로 가볍고 우아하게 땅을 차고 오른다. 그리고 현실의 중력을 아주 벗어나지는 않은 공간에 기발하고 아기자기한 가상 세계를 창조한다.

김씨의 세 번째 단편집에도 예의 흥미로운 '김중혁 월드'가 펼쳐진다. 2009년부터 발표한 단편 7편을 묶은 이 책에는 서울 한복판에 스케이트보더들의 널찍한 놀이터가 있고('C1+y = :[8]:'), 한 도시의 빌딩 관리실을 죄다 연결하는 건물관리인들의 지하 벙커('1F/B1')가 있다. 건물 외벽에 멀쩡히 달려 있던 유리창이 갑자기 떨어져 행인을 덮치고('유리의 도시'), 아무렇게나 버려진 바질 씨앗이 식인 덤불로 돌변하는('바질') 섬?한 세계도 있다.

이 재기 넘치는 '조물주'의 관심은 사물에서 공간(도시)으로 전환한 듯하다. 심상하고 사소한 사물들에 상상력을 불어넣고 작품 중심에 세워 '잡동사니 박물지'라는 별명까지 얻은 첫 단편집 <펭귄뉴스> (2006)에 비교하면 그 변화가 확연하다. 마치 히키코모리처럼 '사람-사물' 관계를 천착하던 작가가 공간 속 '사람-사람' 관계에 눈을 돌렸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는 두 번째 단편집 <악기들의 도서관> (2008)에서 이미 감지됐던 바다.

표제작은 작가의 시야가 괄목할 만큼 넓어졌음을 보여준다. 소설은 가상도시 네오타운의 지하조직 건물관리자연합의 소사(小史)로, 도시 전체를 정전시킨 무리와 맞섰던 '암흑 속의 전투'가 핵심 사건이다. 원인불명의 정전으로 지하벙커에 결집한 건물관리인들은 괴한들을 진압해 상황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리더가 사건에 개입했음을 알게 된다. 네오타운을 유령도시로 만들어 재개발사업권을 따내려는 대기업의 압력에 굴복한 것. 건물관리인 대다수가 열악한 지하실에서 근무하는 현실을 재치있게 패러디하며 출발한 소설은 부조리한 사회계층 문제로 대담하게 나아간다.

'도시(city) = 스케이트보드'를 형상화한 감각적 제목의 수록작 'C1+y = :[8]:'은 도시를 새롭게 설계하고 싶어하는 도시학자가 주인공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도시가 있었다. 모든 골목과 골목이 이어져 있고, 미로와 대로의 구분이 모호하고, 골목이 돌아설 때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또다른 풍경이, 이어지며,…"(32쪽) 도시를 혁신할 아이디어를 찾으러 정글에 갔다가 원숭이에게 구조되고, 고층빌딩과 신호등의 숲을 자유롭게 누비는 젊은 스케이터보더들에게 영감을 얻는 주인공의 행보가 좌충우돌 유쾌하게 그려진다.

이야기 만드는 솜씨가 탁월한 김씨는 몇몇 수록작에 장르소설적 요소를 유연하게 도입한다. '유리의 도시' '바질'에는 스릴러와 미스터리를,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에는 SF와 느와르를 접목해 흡인력을 더한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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