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호텔 / 유순희 글·오승민 그림 / 해와나무 발행·60쪽·8,800원
폐지를 주워 파는 '종이 할머니'는 구부정한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땅만 보고 살았다. 자식 하나 없이 떠난 남편의 빚을 갚고 나니 골이 파인 주름과 기억자로 휘어진 허리, 그리고 누추한 몸을 누일 반지하 전세방만 남았다. 자기구역을 침범해 폐지를 가로 챈 혹부리 할머니를 악다구니 끝에 몰아내봐야 손에 쥐는 것은 항상 푼돈뿐. 할머니는 초라하고 외로웠다. 그래서 더 고개를 숙이고 땅만 봤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집에 쪽빛 가을 하늘처럼 맑은 눈을 가진 소녀가 이사를 오면서 종이 할머니에게 변화가 생긴다.
초등학생을 위한 이 그램책의 주인공은 폐지 줍는 할머니다. "할머니, 이거요"하며 다 쓴 노트며 스케치북, 학습지 따위를 살포시 놓고 가는 소녀는 기다림의 대상, 깨달음을 주는 존재로 어른과 아이의 관계가 역전된다. 할머니는 아이의 삐뚤빼뚤한 글씨와 어설픈 그림 속에서 동심을 회복하고 마침내 우주를 만난다. 눈길이 닿는 땅 한 뼘 정도에 불과하던 시야는 광대한 하늘로 넓어지고, 눈에 커다란 혹을 단 흉측한 외모 탓에 말 상대도 없던 혹부리 할머니에게도 옆집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기꺼이 손을 내밀어 친구가 되어 준다.
초라한 삶도 친구가 있으면 외롭지 않다. 기대가 생기고 웃음이 나오고 마침내 희망을 찾게 된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모든 동화 속 결말은 이 책에서 '계절이 가고 할머니들은 여전히 폐지를 모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어. 혼자가 아니니까. 폐지도 함께 줍고 저녁이 되면 따뜻한 밥도 같이 먹고, 생강차도 나누어 마시고'로 소박하게 변형된다. '여기가 우주 호텔 아닌가…. 여기가 바로 우주의 한가운데지'라는 할머니의 독백처럼 누군가에게 다가가 친구가 되어준다는 게 우주를 선물하는 것처럼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넌지시 일러준다.
크레파스와 물감을 사용한 정감있는 모노톤 그림에 꼴라주 기법을 더한 삽화들이 책 제목처럼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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