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이나 액션영화의 스타, 드라마 속 연인들처럼 진하게 살아낼 수 없는 까닭은 애당초 우리의 일상이 쩨쩨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들과 달리 우리에겐 낯선 도시에서 잔인한 테러리스트와 엮일 일도, 거대한 음모에 희생된 시신의 사연을 감당해야 할 일도 없다. 아름답게 내던질 만한 거창한 그 무엇을 지닌 적조차 없었다.
우리가 그들의 눈부신 활약과 로맨스에 탐닉하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그들의 행위에 대한 감탄 이면에 자극적이고 스펙터클한 일상에 대한 결핍감, 어찌 해도 어쩌지 못할 쩨쩨함에 대한 무기력한 앙탈이 스며 있는지 모른다.
그 쩨쩨함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아크로폴리스라는 신의 품에서 벗어난 순간부터 인간의 숙명이었을 것이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후예들은 인간의 도시인 폴리스를 건설하자마자 앞서 누리던 신적 스케일에 비해 어처구니 없이 옹색해진 내면, 그 일상의 쩨쩨함을 견디기 위해 '극장'을 지었다.
우리는 내면의 앙탈을 달래기 위해 극장에 가거나 백일몽을 꾼다. 그것이 꿈에라도 나타날까 두려운 악마의 하드고어일지라도. 이따금은 죽음과 같은 궁극적인 일탈을 꿈꾸다가 소스라치기도 하면서. 그럼으로써 우리는, 은밀히, 고독하게, 잠깐이나마 비극의 신도 되고 화려한 영웅도 된다. 그런 달콤한 착시가, 떨어져도 줍기 싫을 만큼 스스로가 하찮아지는 현실보다는 나으니까. 그 경험을 누구는 초월이라 하고, 탈주라고도 하고, 감정이입, 도취ㆍ망각, 또 좀 심하다 싶을 땐 정신분열이라는 병명을 갖다 붙이기도 한다.
일상이 쩨쩨하다는 것은 관심사가 쩨쩨하다는 의미다. 관심사가 쩨쩨하니 목숨 걸 일이 없다. 거꾸로 쩨쩨하게 목숨을 거는 경우는 있지만. 쩨쩨한 일상을 견디기 위해, 요컨대 초월하기 위해 우리는 소설이나 영화 연극 게임 음악 스포츠 등 수많은 것들에 탐닉한다. 엄밀히 말하면 '포월(抱越)'이라 해야 한다. 철학자 김진석 교수의 말처럼 초인이 아닌 한 우리는 일상을 초월할 수 없다. 다만 껴안고 안간힘 다해 기어서라도 넘어가야 한다. 기진하지 않기 위한 잠깐의 도취, 쩨쩨한 일상을 흘겨서라도 응시하기 위한 거리 두기. 그래서 포월은 회피와 다르다. '쩨쩨하다'를 '다양하다'로 그럴싸하게 바꿔도 무방하다. 저 수많은 초월기제의 변주가 결국 '다양한' 일상의 반영이자 실재일 테니. 문명의 물길은 자잘한 지류들을 아우르면서 거대해지는 진짜 물길과는 반대로, 상류로 거슬러 오를수록 명료하다. 문명의 선배들이 하나로 뭉뚱그렸던 '극장'은 일상의 다양화와 함께 바쁘게 분화해왔다.
흔히 우리는 극장을 카타르시스의 공간이라 부른다. 극장 문을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일상의 세계를 홀연히 벗어나 상상의 세계로 도약한다. 그 순간 무대 조명(혹은 스크린) 바깥의 어둠은 시선을 묶어두려는 암흑의 커튼이 아니라 일상 너머의 거대하고 다채로운 모험을 약속하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우리를 감싸는 객석의 어둠은 내면의 자유 그 일탈이 동반하곤 하는 염치를 따돌릴 수 있게 해주는 배려다. 건축학자인 임종엽 교수는 라는 책에서 극장을 "실재하면서도 현재성과 사실성을 자발적으로 상실하고자 하는 건축물"이라고 썼다. 관객들로 하여금 극장 공간 자체의 공간성을 부정하게 함으로써, 달리 말해 상상의 현실을 최대한 물리적 현실인 양 체험하도록 함으로써 초월 도취ㆍ망각의 강도를 꾀하는 모순공간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극장은 크게 무대와 객석, 준비공간(분장실이나 대기실, 영화관의 영사실 등)으로 나뉜다. 극장의 풍경- 배우와 관객의 물리적 관계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다. 가령 인류에게 극장을 선사한 그리스인들은 무대를 마주하고 부채꼴처럼 꾸민 객석의 내각을 230도 정도로 펼쳤고, 아테네의 언덕을 흐르듯 내려오다 머문 너절한 일상 공간과 그 너머의 푸른 바다까지 시야 안에 담았다. 230도는 누군가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 그를 중심으로 청중이 모여 둘러싸는 인파의 형태와 아주 유사하다고 한다. 그렇게 모인 아테네의 자유시민들은 공연 중간중간 1만8,000석(디오니소스극장) 객석을 메운 이웃들과 멀리 마을의 골목길도 더듬어보고 하늘과 지중해 물빛 위로도 시선을 던졌을 것이다. 그렇게 공연 몰입도를 덜어낸 자리에 신의 존재와 공동체적 삶의 가치, 자잘한 일상의 상념들을 비교적 분방하게 버무렸을 것이다. 아폴론의 이성으로 지친 일상을 디오니소스의 열정으로 달래고, 열정의 광란을 이성의 균형으로 다독이면서.
구릉의 琉?봇?달리 평지에 터를 잡은 로마인들은 객석과 무대의 높이 편차를 줄이고 객석도 반원 정도로 죄어 내부 공간 느낌을 강화했다. 요컨대 관객의 시선을 통제했다. 이 같은 폐쇄성에 대해 학자들은 대체로 제국 지배라는 정치적 계산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한다. 자의적 해석의 여지를 차단함으로써 극 몰입도(주입력)를 높이려 했다는 것이다. 로마는 점령지마다 광장과 함께 극장을 건설했고, 음악당(오데온)과 경기장(스타디움) 원형투기장(아레나) 등 변형 극장들을 세웠다. 로마의 극장들은 제국 말기(4~5세기), 타락한 귀족문화와 풍속의 음습한 배양지로 변질돼갔다.
이어 중세 천년을 지배한 기독교회는 극(劇)을 악의 씨앗으로 판단, 공식적으로 이단시했다. 초월의 욕망은 오직 교회 안에서 기도와 종교극 등을 통해서만 허용됐고, 미심쩍은 몰입과 망각의 시도는 극장 무대가 아닌 재판의 무대, 화형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만이 도모할 수 있었다. 중세의 대중들이 길거리나 광장 가설무대(테아트로 에피메로ㆍ일명 하루살이극장)에서 교훈적 도덕극이나 어릿광대 소극, 풍자극, 목가극이나마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중세 말기에 이르러서였다. 중세 천년 동안 교회는 단 한 채의 극장도 짓지 않았다.역설적으로 중세 세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현존 르네상스 최초의 극장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팔라디오 극장(1585), 목조로 지어져 문헌으로만 남은 영국의 더 씨어터(1576), 셰익스피어극장으로 더 많이 알려진 글로버극장(1599) 등 문예부흥의 기운과 함께 극장들은 폭발적으로 건설됐고, 근대 현대로 이어지면서 오늘까지 진화해왔다. 극 내용이 다양해지면서 극장 구조와 무대장치 역시 개성적으로 현란해졌고, 바로크 시대의 극장들처럼 사교의 로비 공간이 강조되기도 했다.
극장 공간은 극 몰입도와 거리 두기의 사이, 정치ㆍ경제적 계산과 예술적 고집의 사이, 비용과 편의의 사이, 대세 순응과 반발의 사이를 오가며, 요컨대 대화하며 지금도 숨가쁘게 변신하고 있다. 기술 진보와 함께 영화산업이 탐욕스러우리만치 성장하면서 극장이라는 명칭이 영화관과 동의어가 되다시피 협소해졌고, 더 다양해진 극장들은 옹색해진 어의(語義)만큼 가난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극장은 극장이다. 무대와 객석이 고전적으로 대면하는 공간들도, 그 틈바구니에서, 비극적으로 버티고 있다.
극장의 모태는 고대 그리스의 극장이다. 극의 자궁은 그리스 비극이고 그 씨앗은 디오니소스의 세례에서 왔다고 한다.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는 주신(主神) 제우스를 아비로 뒀지만 어미가 인간인 탓에 그리스 12신 명단에 어떨 땐 들고 어떨 땐 쫓겨나는, 끗발 애매한 신이다. 신들과 인간들로부터 받아야 했던 서자(庶子) 신으로서의 설움과 격정은, 인간 일반의 존재론적 결함(hamartia)의 은유일 것이다. 그리스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는 에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입을 빌어 디오니소스적 비극의 원체험과 그 굴레를 초월ㆍ망각하고자 광란의 축제를 벌이는 키타이론 숲의 여인들(디오니소스의 여신도들)을 역성 든다. "디오니소스가 어떻게 여인들을 억지로 취하게 했겠습니까? 자신들 안에 그러한 도취가 간직되어 있는 것이죠."
재즈 뮤지션의 흔적을 따라 미국 전역을 방랑하면서 엄청난 사건들을 해결해가는 영웅 잭 리처를 만들어낸 영국 출신 하드보일드 작가 리 차일드는 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계 최고의 오디오는 공짜다. 그건 머릿속에 있다. 원하는 만큼 좋은 소리를 낸다. 원하는 만큼 큰 소리를 낸다."세상이 곧 극장이고, 이 사회가 스펙터클의 사회라지만, 우리 각자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극장일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주인공인.
최윤필 선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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