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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윤리 실종된 대학] <1> 온갖 부정 난무하는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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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윤리 실종된 대학] <1> 온갖 부정 난무하는 연구실

입력
2012.06.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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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논문 이중제출하고, 제자연구 실적 가로채고, 실험데이터 변조·위조…

진리의 상아탑인 대학이 연구부정으로 얼룩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대 수의대 강수경 교수의 논문조작 의혹이 불거진 이후 비슷한 사례가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연구부정이 우리 학계에 생각보다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일보가 심층 취재한 대학의 현실은 너무나 쉽게 원칙을 어기고 부정이 만연했다. 대학의 윤리 실종은 사회 전체의 가치관까지 흔드는 악영향을 미친다. 학문의 열정을 앗아가는 연구부정의 실태를 살펴보고 연구윤리를 확립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본다.

지방대 수학과 A 교수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 동유럽의 한 저널에 제출했던 논문을 국내 대한수학회 학회지에도 똑같이 제출했다가 적발됐다. 수학회가 표절검색 프로그램을 돌리자 두 논문이 '98% 일치'라는 결과가 나왔다. 일종의 자기 표절이다. 하나의 연구로 다수의 논문실적을 인정받으려는 것이다.

수학회는 A 교수에게 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거나 연구비를 받는 등의 학회 활동을 2년간 중지시키는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학교에는 알리지 않아 A 교수는 아무 문제 없이 연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수학은 실험 데이터나 사진을 조작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논문이 거의 증명 문제여서 다른 학문보다 부정을 저지르기가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의견. 그러나 A 교수의 경우처럼 수학계에도 그늘이 없지 않다. 대한수학회 관계자는 "폴란드, 체코 등 수학 분야에서 뛰어나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동유럽 국가의 논문을 베끼거나 외국에 이중으로 제출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말했다. KAIST의 한 교수는 "국내 연구자들이 잘 모르는 동구권 논문을 슬쩍 베껴내도 대대적으로 선전하지만 않으면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련의(인턴)를 거친 K(32)씨는 2009년 담당 교수의 논문을 2편이나 대신 집필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며 교육 받던 시절이었지만 빼놓을 수 없는 업무가 논문을 써주는 일이었다고 K씨는 말했다. 그는 3개월 동안 관련 논문 20~30편을 외우다시피 한 후 주제만 살짝 변형해 최대한 표시 나지 않게 짜깁기 논문을 썼고, 저자에 본인 이름 대신 교수의 이름을 올렸다. 짜깁기에 대필까지 섞인 심각한 부정행위다.

K씨 역시 이 일을 지긋지긋하게 여기지만 연구실적을 채워야 한다는 교수의 지시를 거스를 수 없었다. K씨는 "논문을 대신 쓰라고 주문하고 관심조차 갖지 않는 교수가 태반"이라며 "하도 일상적인 일이라 문제를 제기하면 오히려 따돌림을 당할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서울에 있는 K대 생명공학과 B 교수의 수년에 걸친 '학생 논문 빼앗기'는 가히 충격적이다. B 교수 실험실은 같은 전공의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피해야 하는 연구실로 악명이 높다. 한 연구원은 "B 교수가 수년 전부터 대학원생들이 실험한 데이터를 고스란히 빼앗아 친한 관계인 C씨에게 논문을 쓸 수 있도록 줬다"며 "해당 연구실에 있었던 학생들은 제대로 학위를 받고 졸업한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인데, C씨는 당당히 부교수로 임용됐다"고 주장했다. 다른 연구원은 "짧게는 2~3달, 길게는 1년 이상 실험한 자료를 다른 사람에게 통째로 빼앗기면 실험한 사람은 어떻게 논문을 쓰겠냐"고 말했다.

졸업을 못한 학생들은 다른 대학으로 떠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고, 최근 이 실험실은 대학원생 없는 실험실이 돼 버렸다. 하지만 B 교수 밑에서 허송세월한 시간과 상처는 보상받지 못한다. 이 연구원은 "교수의 비위를 건드렸다 졸업은커녕 학계에서 영원히 매장당하기 때문에 속앓이만 할 뿐"이라고 털어놨다.

실험 데이터를 변형하는 변조나, 아예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위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연구부정이다. 고려대 생명과학부 최의주 교수는 2009년 에 원 자료가 없는 실험 데이터를 포함한 논문을 게재했다가 결국 논문을 수정한 일이 있다. 이 사실은 같은 연구실에 있던 다른 학생이 문제제기를 해 드러났다. 최 교수가 조사에 나서자 해당 실험을 맡았던 학생은 "실험노트가 없다"고 발뺌했고, 결국 최 교수는 새로 실험을 해 데이터를 얻어 논문을 수정했다. 이 일은 학교 차원에서 조사되지 않았고 문제의 학생은 정상적으로 졸업했다.

그나마 재현실험을 통해 논문의 핵심 내용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저널이 인정했기에 망정이지 연세대 의대 이현철 교수는 2000년 에 발표한 논문 내용을 7년에 걸쳐 재현하다 실패해 결국 2008년 논문을 철회했다. 애초에 실험도 하지 않고 데이터를 만들어냈다는 의심을 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강경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의 경우 실?사진을 상하로 뒤집고 180도 돌리는 등의 조작을 한 의혹을 받고 있고, 김상건 서울대 약대 교수는 이미 게재한 논문 속 데이터를 다른 논문에 중복 사용한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학문은 결과나 생산성이 전부가 아니다. 학생과 교수가 토론하며 학문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며 "결과만 중시하는 학계 분위기에서 벗어나 연구진실성을 다시 세우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용어 설명

● 위조=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 또는 연구결과를 허위로 만들어 내는 행위

● 변조= 연구재료·장비·과정 등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실험데이터를 변형·삭제함으로써 연구내용이나 결과를 왜곡하는 행위

● 표절=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 연구내용, 결과, 문장 등을 적절한 인용 없이 옮겨 쓰는 행위

● 부당한 논문저자 표시= 연구에 과학적·기술적 기여를 한 사람을 정당한 이유 없이 논문저자에서 빼거나, 기여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 예우 등을 이유로 논문저자 자격을 부여하는 행위

이동현기자 nani@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 "실적 높여야 하니…" 이름 끼워놓고 실험은 제자가 하고 1저자는 교수

서울의 국립대 인문대 박사과정 Y(29)씨는 "석사과정 때 내가 공들여 작성한 논문을 학회에 제출하면서도, 내 이름은 세 번째 저자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검토하고 깊이 관여한 지도교수가 공저자로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학과 원로 L 교수가 '논문을 봐 주겠다'고 부르더니 단어와 조사 몇 개를 고친 후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 Y씨는 "지도교수도 스승뻘인 L 교수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했다"며 "처음부터 이렇게 무임승차를 하려고 학생에게 지도를 자처했다고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연구 내용은 알지도 못한 채 공동 저자에 이름만 올리는 '논문 갈라먹기'는 취재 과정에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었던 연구부정 사례였다. 기여도의 경중을 무시한 채 저자 순서가 뒤바뀌는 일도 허다했다. 이 때문에 가장 분노하는 것은 고생해 논문을 쓴 연구자 본인이다.

국내 명문 사립대에서 생명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유학을 앞둔 한 연구자는 "학생(대학원생)과 연구교수 2명이 공동 제1저자로 등재된 논문들을 보면 실제 실험은 학생이 다 하고 연구교수는 실적을 위해 이름만 넣어준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교수 임용이나 연구과제 선정시 제1저자로 논문을 내야 가장 높은 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2저자에 교수를 무임승차시키는 일은 더 빈번하다. 충북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 L(35)씨는 레지던트 시절엔 담당 교수, 최근엔 학과장의 이름을 자기 혼자 연구한 논문에 올렸다. L씨는 "제2저자를 추가하는 것은 별로 부담스럽지 않고, 교수 실적을 높여주면 잘 보일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주 연구자가 다른 교수의 이름 끼워넣기를 거부하지 못하는 이유는 학위나 연구비를 받아야 하는 절실한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박상욱 숭실대 행정학부 교수는 "직속 상관이나 다름없는 교수에게 문제를 제기하면 학계에서 사실상 퇴출될 위험을 안게 돼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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