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개입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증거가 즐비했지만, 검찰이 증거불충분으로 면죄부를 주자 "민정수석실은 검찰의 성역이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권재진 법무부장관은 2010년 7월 불법사찰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민정수석이었다. 또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에게 관봉 5,000만원을 줬다는 의혹을 산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 불법사찰 사건 1차 검찰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어찌하여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고 질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김진모 전 민정2비서관(현 서울고검 검사)도 민정수석실 소속이다. 이번 재수사 과정에서 녹취록과 관련자 증언을 통해 민정수석실이 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점점 커졌지만, 검찰은 수사의 돌파구가 없다는 이유로 압수수색 등 강제조치도 시도하지 않았다. 왜 검찰은 민정수석실 앞에만 서면 약해지는 걸까.
검찰이 민정수석실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요인은 인사권이다. 법률상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하고,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돼있다. 하지만 차관급인 민정수석도 검찰 인사에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게 정설이다. 민정수석이 최종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측근으로 있으면서 인사검증을 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불법사찰 사건 의혹의 중심에 있는 권 장관은 전례가 드물게 민정수석에서 곧바로 법무부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경우다. 권 장관이 버티고 있는 이상 수사팀의 성역 없는 수사는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말이 이번 사건 수사 초기부터 나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검찰 출신이 관례적으로 민정수석실 요직을 차지하는 것도 이번 수사의 걸림돌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민정수석실은 대통령 친인척 관리, 공직기강 점검, 동향 파악을 주 업무로 한다. 이 같은 업무 성격 때문에 역대 정권은 현직 검사를 민정수석실로 불러 들였다. 이귀남 전 법무부장관의 경우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지냈고, 통합민주당 박주선 의원은 검사 재직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검사 파견 관행은 민정수석실이 검찰 인맥을 활용해 정권 입맛에 맞게 수사를 통제하거나, 은밀한 수사 정보를 빼내는 등 부작용의 가능성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참여정부가 민정수석실에 재야 변호사와 판사 출신을 중용하고, 검사를 파견받더라도 검찰에 사표를 내고 오도록 한 것은 이런 부작용을 개선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이는 흐지부지됐고 민정수석실에 파견갔던 검사들이 다시 검찰 요직으로 들어오는 관행이 되살아났다. 특히 권재진 민정수석이 법무부장관으로 자리를 옮김으로써 과거보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 훨씬 더 후퇴했다는 지적이 야당에서 나오기도 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모든 권력자는 검찰 조직이 자신의 통제 하에 있기를 원한다"며 "이 때문에 정권 차원에서 민정수석에 힘을 실어주고, 법무부장관에게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 지휘ㆍ감독 권한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