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수가제(입원비 정찰제)의 필요성을 적극 강조하고 있는 보건복지부가 공중보건의 교육교재에서 포괄수가제의 단점으로 '의료의 질적 수준 저하'를 명시(사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가 평소 주장하던 논리와는 전혀 다른 것이어서 의사들에 대한 교육 및 설득작업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14일 복지부의 '신규 공중보건의사 중앙직무교육교재'에 따르면 정부는 포괄수가제의 장점으로 '경영과 진료의 효율화'등 3가지를, 단점으로 '의료의 질적 수준 저하'등 2가지를 꼽았다. 지난해 교재의 내용 그대로다. 포괄수가제의 장점에 대해서도 '환자의 본인부담 완화'처럼 복지부가 현재 내걸고 있는 내용은 제시되지 않고, 의료계와 심평원의 업무 간소화 등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이 자료를 작성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김모 심사위원(정형외과 전문의)은 "포괄수가제는 의료의 질 하락과 관련이 없다는 연구결과들이 이미 나와 있고, 마무리가 된 논란인데 도입 초기 의료계의 우려를 옮기면서 '우려'라는 문구를 빠뜨리고 신중하지 못했다"며 "복지부에서도 지적이 들어왔고 곧 수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포괄수가제는 미국에서 개발되고 유럽에서 적극 수용되는 과정에서 초기에 의료의 질적 하락 우려가 제기됐었지만, 이후 평가 연구들에서 그런 우려는 없는 것으로 나왔다고 덧붙였다.
복지부의 허술한 관리로 이런 자료들이 해마다 공중보건의들에게 교육되면서, "이제 와서 의료의 질 하락과 관련 없다니 믿을 수 없다"는 의료계의 반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모 대학병원 전공의로 일하는 A씨는 "의과대학 3,4학년 때 배우는 '의료관리학' 교과서, 시험문제에서도 포괄수가제가 의료의 질을 하락시킨다고 나오는데도 복지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포괄수가제는 과잉진료를 막고 의료의 질 하락과는 관련이 없다"며 관련 연구 결과를 적극 공개했지만, 정작 가장 협조가 필요한 의료계에 대해서는 교육과 소통이 소홀했던 셈이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국민 1,000여명을 상대로 포괄수가제 설문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에 따라 7월 수술 거부 강행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별도로 상임이사들을 상대로 '모든 수술의 전면 거부' '응급 외 수술 전면 거부' '수술 거부 없음'의 세 가지 안을 놓고 16일까지 온라인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제왕절개 수술을 거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던 산부인과의사회의 박노준 회장은 "강경파가 있어 '전면 거부'도 선택항목 중 하나로 포함시켰지만 그런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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