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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펑크의 소란조차 없는 주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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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펑크의 소란조차 없는 주빌리

입력
2012.06.1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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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왕 즉위 60주년을 축하하는 다이아몬드 주빌리가 며칠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영 왕실의 역사 상 두 번째라는 60주년의 재위기간도 경사할 일이라면 그럴 일이겠지만, 때마침 올림픽 개최를 목전에 둔 영국의 처지로서 볼 때도 아마 이번 행사는 크게 자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이아몬드 주빌리의 휘황한 풍경을 지켜보고 있자니 조금은 괘씸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이렇게 감쪽같이 무탈하게 다이아몬드 주빌리가 진행될 수 있냐는 것이다.

맨 먼저 퍼뜩 떠오르는 것은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라는 악명 높은 노래를 부른 섹스피스톨즈라는 펑크 밴드였다. 이 밴드는 자신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정규앨범인 '네버마인드 더 볼록스'에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란 노래를 실었다. 노랫말 자체를 뜯어보면 이 노래엔 불경하고 위험할 것이 없다. 외려 이 노래는 관례적인 여왕 예찬을 반복한다. 이번 주 세계에 울려 퍼진 '위대한 여왕 만세'란 외침과 이 노래가 이야기하는 것 사이에는 그다지 큰 거리가 없다. 그렇지만 농담으로 우리가 "정말, 잘났어"라고 말할 때 그것이 잘나서 잘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 만큼이나 이 노래가 말하는 여왕에 대한 예찬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 없다. 그르렁대는 목소리로 빈정대고 야유하듯 노래를 부르는 자니 로튼의 목소리는 분명 다른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펑크는 재미삼아 우려먹을 수 있는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펑크 밴드란 펑크를 연주하는 밴드이지 섹스 피스톨즈처럼 목격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센세이션이 될 악동의 무리는 더 이상 아니다. 1970년대 후반의 대중음악에 던져진 화염병이었던 펑크가 아직도 여전하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한심한 일이지만 그 시대의 펑크가 대중음악의 역사를 뒤흔든 혁명이었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도 실은 억지에 가깝다. 그것은 영미 대중음악 저널리즘이 만들어낸 신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펑크가 이렇다 저렇다 하기에 앞서 우리는 록큰롤이 항상 자신을 내세울 때 이야기하던 권위에 대한 저항을 거의 투명하리만치 적나라하게 구현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나는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중계하는 뉴스를 들춰보다 뜬금없이 펑크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갈등과 대립이 없는 하나의 조화로운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만큼이나 불길한 일은 없다. 하나의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지하는 몸짓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무정부주의적인 반동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권위의 화신을 조롱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찰나적인 몸부림으로 그칠 뿐 세계를 바꿀만한 힘을 모으지는 못한다고 점잖게 훈계하기란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몸짓이 운반하는 즐거움과 에너지까지 무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 "아니오"나 "싫어요"란 말밖에 모르는 이 정신박약 상태의 저항에 눈곱만큼도 동조할 생각이 없다.

그렇지만 아직 세계를 부정할 충분한 준비가 갖춰지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한다는 정적주의적인 태도보다는 일단 세계에 대한 부정의 에너지를 토해내고 보는 무정부주의적인 반항에 기꺼이 지지를 보낼 의향이 있다.

그리스와 스페인에서는 연일 정부의 긴축에 반대하는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지고 유럽통합을 위한 마지막 걸음이던 유럽 경제통합은 이제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있다. 영국 역시 유로존의 외곽에서 투기적인 금융자본주의의 종주국으로서의 운명을 감내해야할 처지에 이르러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주빌리에서 우리는 세계가 미쳐 돌아가고 있음을 기별하는 어떤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 이는 영국에겐 차라리 치욕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펑크들의 야단법석조차 없는 주빌리라니! 그것은 그 사회가 얼마나 기능부전인지 알려주는 신호일 것이다.

서동진 계원예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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