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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한양성곽 복원구간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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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한양성곽 복원구간 가보니

입력
2012.06.1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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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국보 1호 숭례문에서 소월길을 따라 100m 정도 오르자 남산 정상을 향해 치닫고 있는 한양도성이 웅자를 드러냈다. 남산 백범 광장일대의 한양도성이 1918년 일제의 조선신궁 건립으로 성곽이 파괴된 지 95년 만에 서울시의 복원 공사를 통해 되살아난 것이다. 1년 6개월에 걸쳐 편마암 1,399 톤과 화강암 1,098 톤을 투입돼 131m가 복원된 한양도성에는 평일에도 적지 않은 관람객들이 오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이성주(34)씨는 “남산 성곽이 복원됐다는 소식을 듣고 점심 시간을 이용해 올라왔다”며 “생각과 달리 성곽의 모습이 정교하고 아름다워 놀랐다”고 말했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윤양미(46)씨도 “일제에 의해 훼손된 한양 도성이 역사적 고증을 통해 거듭난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고 밝혔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낼 정도로 남산은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이를 간파한 일본은 조선 침략에 앞서 1885년 일본공사관을 지금의 남산 유스호스텔 서쪽에 설치했다. 또 을사조약 체결 이후인 1918년에는 한양성곽을 파괴하고 그 땅에 조선신궁을 세웠다.

서울시가 지난달 말 완료한 남산회현 한양도성 2단계 복원공사는 이렇게 일제에 의해 파괴된 한양도성을 복원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이번 복원공사는 1970년대 이뤄진 한양 도성 복원이 역사적 고증이 부족했다는 비판에 따라 인간문화재 120호 석장 이의상씨가 참여해 석재를 다듬는 기법과 방식까지 조선시대의 방식을 재현해 그 의미를 더했다. 문화재수리기술자로 이번 공사의 현장 소장을 맡은 한명석씨는 “태조 때 축성한 4.5m의 성곽 담장은 남산에서 나온 편마암으로 쌓았고 그 위에 세종 때 쌓은 1.5m의 구조물은 화강암을 썼다”며 “당시에 사용한 것과 비슷한 편마암과 화강암을 구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번 복원과 동시에 서울시는 소월길로 인해 끊어졌던 70m 구간을 터널로 연결하고 그 위를 녹지공원화 했다. 또 독립운동가로 초대 부통령을 지낸 성재 이시영 선생의 좌상을 기존의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 옆으로 이전했다. 여기에 백범 광장에 자리한 안중근의사 기념관까지 더해져 남산 한양 도성 일대는 일제의 흔적을 벗고 독립 운동가들을 기리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복원의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도성의 흔적이 발견된 131m는 원형을 복원했지만 흔적자체가 사라진 109m는 도로에 표식을 남기는 수준에 그쳤다. 또 남산 봉수대로 이어지는 정상 구간의 한양 성곽은 70년대에 시멘트를 주재료로 복원된 탓에 이번 복원 구간과 확연한 대조를 이뤘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양성곽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비해 잘못 된 고증 시비를 낳고 있는 남산 정상의 봉수대를 포함해 정상 구간의 한양 도성에 대한 재복원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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