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테러 장비 계약 업무를 담당했던 지위를 이용해 납품업체에게 금품을 뜯어낸 경찰 중간간부가 적발됐다.
시작은 2004년 3월 '소주 한잔'이었다. 경찰청 대테러계에 근무했던 박모(49) 경감(현 서울 양천경찰서 소속)은 대테러장비 납품업체 C사 조모(48) 대표에게 "소주나 한 잔 사달라"며 연락해 서울 여의도에서 처음 만났다. 이렇게 안면을 튼 박 경감은 여덟 달 뒤엔 친구인 이모(49)씨를 끌어들여 2004년 12월부터 2006년 초까지 1억1,800여만원 상당의 C사 주식을 사게 했다. 자신이 대테러장비 계약의 실무를 맡게 된 2005년 5월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주가가 떨어져 3,200만원의 손해를 보게 되자 박 경감은 조 대표에게 연락해 "친구 이씨가 그 회사 주식을 샀다가 손실을 봤으니 물어주라"고 했다. '뇌물을 달라'는 암묵적인 신호. 조 대표는 곧장 회사 직원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자신을 찾아온 이씨에게 통장을 쥐어줬다. 그러곤 2006년 4월부터 2009년 9월까지 두 달에 한번 꼴로 300만원~500만원씩을 계좌에 넣었다. 42차례에 걸쳐 조 대표가 건넨 금품은 1억 870만원에 달했다.
이 대가로 박 경감은 C사에 납품 편의를 봐줬고 조 대표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경찰 대테러장비의 46%(83건)를 수의계약(공개입찰의 반대 개념)으로 따냈다. 경찰 수사 결과 조 대표는 경찰청 말고도 해양경찰청, 군, 한국공항공사 등 대테러장비를 납품하는 국가기관에 전방위 로비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14일 박 경감과 공모자인 친구 이씨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 C사의 대표 조씨와 이 회사 총괄본부장 이모(41)씨 등을 출국금지 조치하고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C사로부터 금품 로비를 받은 한국공항공사 4급 직원 조모(44)씨, 해양경찰청 박모(46) 경감(뇌물수수 혐의), 전직 육군 대령 조모(61)씨도(변호사법위반 혐의) 불구속 입건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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