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기 못 먹어 힘 없다? 영양소 섭취 충분해요"
방송인 김제동, 탤런트 이하늬, 가수 이효리까지 요즘 채식에 빠진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화제다.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특별한 결심이 필요한 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점점 채식의 매력에 빠지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위기 의식을 느낀 육가공 관련 업계는 ‘육식과 채식의 균형 잡힌 식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채식에 대한 작은 오해부터 풀어볼까.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고기와 해물은 물론 동물에서 나오는 모든 것, 가령 우유 버터 치즈 같은 유제품과 달걀, 육수까지 먹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같이 엄격한 채식인을 비건(vegan)이라 부른다. 그러나 다소 느슨한 기준에서 보면 채식인의 분류는 매우 다양하다.
유제품이나 달걀과 같은 동물의 알까지 먹는 락토오보(lacto-ovo)와, 여기에 더해 생선도 먹는 페스코(pesco)는 서양에서 가장 흔한 채식의 방식이다. 닭과 오리 같은 가금류는 먹지만 소, 돼지 등의 포유류를 먹지 않는 이들은 폴로(pollo)라고 부른다. 넓은 의미에서 이러한 방식은 비건으로 이행하는 과정으로 보이지만, 엄밀한 잣대로 보면 비육식 혹은 준채식이라고 할 수 있다.
채식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건강을 위해 하는가 하면 동물 사육에서 발생하는 환경 오염에 반대하며 비육식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사육 동물을 학대하는 공장식 농장 시스템에 대한 거부감이나 식량 부족의 해결, 바른 먹거리에 대한 관심, 혹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육식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붉은 고기에 얽힌 기억 때문에 10년 전부터 폴로 베지터리안이 된 호텔리어 윤문엽(29)씨는 어린 시절 10년 간 야구를 했다. 야구 선수를 그만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체격을 키우기 위해 하루 다섯 번,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의무적으로 먹는 것이 고역이었다는 그는 고교 졸업 후 자연스럽게 붉은 고기를 안 먹는 준채식인이 되었다.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지만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주위의 불편한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친구들이 저를 배려해 고깃집을 안 가려고 한 적도 많아요. 하지만 제가 일부러 가자고 해서 전 된장찌개를 안주 삼아 먹곤 했죠. 익숙해지다 보니 이젠 모임 장소에 구애받지는 않아요. 하지만 아무래도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완전히 비건이 될 생각은 없어요. 필요에 따라선 닭고기도 먹어야죠.”
여름이면 삼계탕 대신 추어탕으로 건강을 챙긴다는 그는 평소엔 제철 나물이나 두부 요리를 자주 먹는다고 한다.
지역아동센터 교사 최숙경(33)씨를 채식으로 이끈 것은 바른 먹거리와 귀농에 대한 관심이다. 지난해 3월, 귀농 준비를 위해 찾은 도시농부학교 수업을 들으며 채식을 결심했다. 처음엔 채소는 물론 현미쌀까지 날로 먹는 생채식을 3개월간 했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 맞지 않자, 그 이후론 일부 채소나 곡물은 익혀 먹고 있다.
“유년 시절, 방학 때마다 시골 할머니 댁에서 농사일을 도와드렸는데,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 귀농을 결심했는데, 수업을 듣고 모임에 나가면서 좋은 식재료부터 생태 환경까지 관심 영역이 넓어졌죠. 공장식 사육의 불편한 진실도 많이 알게 됐구요.”
그는 해물이나 유제품, 달걀은 모임 등의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먹지 않는다. 주 외식 메뉴는 비빔밥. 한식당을 가도 나물류만 골라 먹고, 친구들이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자신은 여러 종류의 버섯과 파, 양파 등을 구워 먹으니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단다.
“채식을 하면 힘이 없지 않냐고 묻는 분들이 많아요. 전 아이들이랑 지내서 에너지 소모가 많은 편인데도 체력이 달린다는 느낌은 전혀 없어요. 늘 현미밥을 먹구요, 단백질 보충은 나또처럼 생으로 먹는 청국장으로 하죠. 아침에 한 숟가락씩 식전에 먹기도 하고, 밥에 비벼 먹기도 해요.”
한동안 봄나물로 식탁이 풍성했다는 그는 채식 식단을 줄줄이 읊었다. 귀농학교 텃밭에서 키운 상추나 열무를 겉절이해서 먹거나 호박을 굽고 가지, 토마토, 파프리카를 얇게 썰어 올리브유를 살짝 둘러 먹기도 한다. 겨울에는 미역이나 파래 같은 해조류로 식단을 짠다.
채식을 하면서 그의 미각은 더 예민해졌다. 양념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나물에 들기름과 소금 간만 살짝 하면 그윽한 향이 그대로 남아요. 또 드레싱 없는 샐러드에 익숙해지면 모든 채소는 쓰다는 편견은 사라지죠. 단맛, 신맛, 매운맛까지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럼에도 그 역시 비건은 좀 더 생각해봐야겠단다.
“지인이 비건인데, 멸치 육수도 안 드세요. 국숫집에 가면 맹물에 국수만 말아 드시거든요. 전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앞으로는 뿌리채소나 과일의 껍질까지 다 먹는 마크로비오틱을 한번 해볼까 해요. 최소한의 조리법으로 영양소를 온전히 섭취하는 방법이니까요.”
채식을 시작한 사연만큼이나 채식 형태도 다양하지만, 비건은 좀처럼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다. 우유나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은 포기하더라도 추운 겨울 멸치 육수나 어묵 국물처럼 감칠맛 나는 국물의 유혹을 피하기란 쉽지 않으니.
그럼에도 채식한 지 13년에 접어든 번역가 김우열(38)씨는 올해 초 비건이 됐다. 동물 애호가가 아니라고 밝힌 그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시작한 명상 때문에 채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신적 방황으로 힘들 때 명상의 세계를 알게 됐는데, 제가 입문한 명상은 채식이 기본 규율이었어요. 살생을 하지 않는 선에서의 섭취를 의미했기 때문에 유제품은 허용이 됐죠.”
그때가 1999년 3월이다. 지금은 비건 중에서도 프루터리언(fruitarian)으로, 식물에 가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과일, 곡식, 견과류 등의 열매를 위주로 섭취하고 있다.
“명상과 함께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채식을 시작한 뒤 몸과 마음이 모두 가벼워졌어요. 건강도 좋아졌구요. 올해부터 유제품과 백밀가루, 정제 설탕을 끊고 나니 30년간 절 괴롭히던 알러지 비염도 사라졌네요.”
최근 그는 자신의 채식 경험을 토대로 (퍼플카우 발행)이라는 책을 펴냈다.
채식은 이제 또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그러나 아직 극복할 오해가 많다. 김우열씨는 채식에 대한 오해를 이렇게 설명했다.
“채식을 제약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이건 먹어도 되고, 저건 먹으면 안 된다고 이해하는 거죠. 하지만 전 관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채식은 무엇을 못 먹는 게 아니라, 무엇을 먹을지 스스로 선택하는 일이거든요.”
채식은 그의 말대로 선택의 문제다. 이들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어쩌면 채식은 그동안 몰랐던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새로운 창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채식이라는 삶의 방식이 인간의 기질에 미치는 영향만으로도 채식은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고 말했던 것처럼.
이인선기자 kelly@hk.co.kr
■ 채식 레시피 2선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제철 채소로 만든 요리는 삼계탕 못지 않은 보양식이 될 수 있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의 레스토랑 ‘아시안 라이브’의 나은선 셰프는 영양과 맛을 챙길 수 있는 두 가지 채식 요리를 제안했다. 버섯 소스를 얹은 두부 스테이크와, 채소를 가지로 돌돌 말아낸 가지전 새싹말이가 그것.
나 셰프는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두부와 유해물질을 배출하고 혈액을 맑게 해주는 버섯의 조합은 오랜 시간 채식을 해온 여성들에게 좋다”고 했다. 반면 가지는 수분이 90%이상으로, 몸을 식혀주는 여름 채소이기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리는 남성에게 좋다고 한다. 가지의 보라색에는 면역 기능을 하는 안토시아닌 색소가 함유되어 있어 항암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지전 새싹말이에 들어가는 파프리카는 다른 채소보다 비타민 A, C가 월등히 많아 피부 건강에 좋고 피로를 풀어준다.
▩ 두부스테이크와 버섯소스
두부 스테이크 재료
두부 1모, 감자 1개, 다진 양파 2TS, 다진 애호박 2TS, 다진 당근 1TS, 전분 1TS, 소금 1 ts, 후추 약간, 밀가루 1/2컵, 기름 2ts
만드는 법
1. 두부는 물기를 제거하고 곱게 으깬다.
2. 감자는 삶아 식히고 곱게 으깬다.
3. 으깬 두부와 감자, 다진 양파, 애호박, 당근을 한데 섞어 전분, 소금, 후추로 간 한 뒤, 반죽해 모양을 빚어둔다.
4. 빚어 놓은 두부 반죽에 밀가루를 묻혀 기름을 두른 팬에 지져 낸다.
버섯 소스 재료
표고버섯 10개, 양송이버섯 10개, 팽이버섯 1봉지, 파 1/2개, 마늘 5쪽, 다시마 약간, 물 1컵, 식용유 1TS, 소금 1ts, 후추 약간
만드는 법
1. 표고 5개, 양송이 5개, 양파는 채 썰어 둔다.
2. 마늘은 편으로 썰어 놓고, 팽이는 밑동을 잘라 뜯어 둔다
3. 다시마는 육수를 만들어 놓는다.
4. 나머지 표고와 양송이는 구워 놓는다.
5. 다시마육수에 4를 넣고 끓인 후, 믹서기에 곱게 갈아 둔다.
6. 기름을 두른 팬에 1, 2를 넣고 볶다가, 5를 넣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하여 마무리한다.
7. 그릇에 버섯 소스를 반만 깔고 지져낸 두부 스테이크를 얹고 나머지 버섯 소스를 끼얹어 낸다.
▩ 토종 가지전 새싹말이
재료
가지 2개, 3색 파프리카 1/2개씩, 새싹 50g, 밀가루 1/2컵, 소금 1TS, 후추 약간, 기름 2TS, 발사믹 식초 2TS, 간장 1ts, 설탕 1/2ts
만드는 법
1. 가지는 세로로 얇게 썬다.
2. 3색 파프리카를 채 썬다.
3. 새싹은 씻어 물기를 제거한다.
4. 발사믹 식초는 약한 불에 반으로 졸여둔다.
5. 얇게 썰어둔 가지에 소금, 후추를 뿌려 밀가루를 묻힌 후, 기름을 두른 팬에 지져낸다.
6. 지진 가지에 채 썰어 둔 3색 파프리카와 새싹을 놓고 돌돌 만다.
7. 졸여둔 발사믹 식초와 간장, 설탕을 섞어 소스를 만든다.
8. 그릇에 말아 놓은 가지를 담고 소스를 뿌려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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