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불법사찰 사건 수사를 종결하면서 배포한 자료에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MB'의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검찰은 마지막까지 이 사건에서 이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사찰내용 비선 보고의 종착지를 이 대통령으로 지목한 문건과 관련자들의 진술이 적지않게 나왔기 때문에 의혹을 그대로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이 불법사찰과 뒷수습 과정을 어떤 식으로든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수사 초기부터 제기됐다. 청와대 개입설을 폭로한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재수사 초기인 지난 3월 말 "지난해 1월 정일황 전 총리실 과장으로부터 (나와 관련된 이야기가) VIP에게 보고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당시는 장씨가 청와대 개입설 폭로를 준비할 때로, 청와대는 이 무렵 그에게 금품과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입막음을 위한 회유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 전 과장은 장씨의 발언 내용을 부인했지만, 장씨는 세종문화회관 인근 커피숍에서 정 전 과장이 VIP를 의미하는 엄지손가락까지 세워 보이며 말했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특히 지원관실의 역할과 체계 등이 명료하게 정리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라는 문건은 'VIP 보고는 공직윤리지원관->BH 비선->VIP(또는 대통령실장)'라고 보고 라인을 명시하고 있다. 청와대를 뜻하는 BH와 이 대통령이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다. 이 문건에는 'VIP께 一心(일심)으로 충성'이라는 대목도 등장한다. 또 다른 지원관실 문건에는 '보고서를 작성할 땐 본인(지원관실 직원)이 대통령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기술'하라고 적혀 있다. 지원관실이 사실상 이 대통령을 위한 친위기구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이 이 대통령 관련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전혀 없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대통령실장이나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기 때문에 수사가 벽에 부딪혔다"는 것이 검찰의 궁색한 해명이다. 결국 이 대통령이 불법사찰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는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특검이나 국정조사에서 규명할 과제로 남게 됐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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