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22일 서울 목동 양정고 운동장에 서울서부혈액원 헌혈버스 6대가 들어섰다. 오전 8시 3학년 학생들부터 시작한 헌혈은 오후 4시까지 학생 386명이 참여했지만, 2학년 16개 반 중 7개 반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학교는 고민 끝에 3일 뒤 헌혈을 다시 실시하기로 결정했고, 그 날 학생 148명이 추가로 헌혈했다.
김명숙(49) 보건교사는 "정해진 시간 안에 못해도 그날로 헌혈을 끝내버리는 여느 학교와 달리 추가 헌혈을 실시하고 학생들이 기꺼이 팔을 걷어붙인 것을 보고 혈액원 관계자들도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운동장에 혈액차가 나타나면 학생들은 슬슬 꽁무니를 빼는 게 보통이지만 양정고 학생들은 알아서 적극 참여하기 때문에 헌혈 때마다 교내가 들썩인다.
14일 헌혈자의 날을 하루 앞둔 13일 양정고에 숨어 있는 헌혈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학교를 찾았다. 헌혈자의 날은 2004년부터 국제적십자연맹, 세계보건기구, 국제헌혈자조직연맹이 공동으로 헌혈하는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만들었다.
학생들이나 교사들은 하나같이 헌혈 열기의 원인은 김창동(56) 교장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나깨나 헌혈의 좋은 점을 선전하고 다녀 '헌혈 교장 샘'이라 불리는 김 교장은 2007년 9월 부임 이후 학생과 학부모를 만날 때면 "건강에도 좋고, 소박하게나마 사회 공헌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 교장은 보건수업과 2008년부터 학부모와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양정평생학습교실'에서 헌혈 강의를 빠뜨리지 않고 진행해 왔다.
그 결과 "한참 공부할 나이에 무슨 헌혈이냐" "건강을 해쳐 공부에 방해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많았다. 하지만 끊임 없는 '반복 학습'때문인지 차츰 거부감을 거둘 수 있었다.
김 교장이 헌혈 전도사가 된 것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교장은 "사촌 누나가 심장병으로 쓰러져 긴급하게 수혈이 필요할 때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있어 헌혈의 중요성을 당시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2001년 없앤 청소년적십자(RCY) 동아리를 지난해 재창단했다. 또 연간 3차례 하는 헌혈을 지난해부터 5회로 늘렸다. 입시 준비에 바쁜 3학년 학생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11월말 헌혈할 수 있게 배려했다. 김 교장의 열성 때문에 600명 안팎이던 헌혈 참여 학생수도 지난해에는 1,000명(1,066명)을 넘어섰다. 서부혈액원 관계자는 "남자 고교의 경우 보통 300명 정도 헌혈에 참여하지만 양정고는 3배 가까이 되다 보니 헌혈버스 6대를 총동원한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평균 두 차례 헌혈을 한다"며 "자발적으로 희생과 봉사정신을 실천하는 학생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헌혈자의 날'에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는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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