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박은정(34)씨는 지난 주말 저녁 갓 초등학교를 입학한 아들과 한강 반포지구 둔치에 산책을 나갔다 아찔한 경험을 했다. 자전거도로 옆 인도를 따라 걷던 아이가 자전거도로 쪽으로 나갔다 뒤에서 빠르게 달려오던 사이클에 치일 뻔 했기 때문이다. 사이클 운전자의 반응이 적반하장이다. 그는 성난 얼굴로 "자전거 도로에 갑자기 뛰어들면 어떡하냐"며 소리를 빽 지르고는 가버렸다. 박씨는 "요즘 날이 무덥다 보니 크게 늘어난 한강변 산책객들이 무법자처럼 폭주하는 자전거들 때문에 섬뜩한 일을 당하는 경우를 여러 번 목격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달 초 큰 자전거 사고가 나기도 했다. 한강변 자전거 도로를 따라 하이킹을 즐기던 자전거 동호회 회원인 K(40)씨는 동작대교 남단 부근에서 잠시 쉬기 위해 속도를 줄이고 뒤를 살피는 사이 뒤에서 추월하던 자전거에 얼굴이 받쳐 전치 5주 부상을 입었다. 코뼈와 광대뼈가 골절된 탓이다. 당시 김씨가 정신을 잃고 실려갔던 순천향대 서울병원 응급실 관계자는 "휴일엔 한강변 자전거 사고로 들어오는 사람만 10명이 넘는다"며 "두 시간에 한 명 꼴로 구급차에 실려온다"고 말했다.
한강 둔치 자전거 도로의 제한속도는 시속 20km. 하지만 대부분의 자전거 운전자가 이 규정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지키는 경우도 거의 없다. 항상 속도계를 달고 한강변을 달린다는 직장인 박모(35)씨는 "조금만 속도를 내도 20km를 훌쩍 넘는다"며 "아무래도 힘이 부족한 여성이나 중년층 이상 운전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제한 속도를 넘게 된다"고 말했다. 순간 최고 속도의 경우 일반인도 평지에서 40~50km, 내리막길에선 50~60km까지 낼 수 있다는 게 자전거 동호인들의 설명이다. 자전거 동호인 문강태(34)씨는 "동호인 중에서도 평지에서 시속 60km를 찍는 사람도 있고 특히 저항을 덜 받는 사이클의 경우 내리막길에서는 웬만한 자동차 이상으로 빠르다"며 "어떤 면에선 자동차보다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강 변 산책객을 위협하는 것은 과속 만이 아니다. 직장인 정모(45)씨는 "자동차 하이 빔처럼 한 순간 시야를 가릴 정도로 밝은 자전거 헤드라이트를 달고 다니는 자전거도 있더라"며 "남 생각은 않고 자기만 안전하면 된다는 얄팍한 속셈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처럼 자전거 사고 위험성이 높아졌고 사고건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관련 법 규정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차'에 해당하지만 과속, 뺑소니를 하더라도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특히 음주운전의 경우 금지 규정은 있으나 정작 처벌규정이 없다. 한마디로 실효성이 없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4년(2008~2011)간 자전거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서울에서만 127명. 같은 기간 부상자는 1만2,413명에 이른다. 서울만 하더라도 2007년 1,874건이던 자전거 사고가 2011년에는 3,000건이 넘는 데도 당국은 법을 정비할 생각도 않고 있다.
물론 자전거 사고로 타인을 다치거나 죽게 할 경우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 적용돼 '5년 이하의 금고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한 일선 경찰서 교통조사과 조사관은 "자전거 사고로 경찰서에 오는 사례가 크게 늘었지만 명확한 관련 법령이 마련되지 않아 대부분 합의를 하도록 유도하는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또 자전거 인구 증가 및 과속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사고 및 상해 위험성이 높아진 상황이지만 자전거 보험을 드는 이도 거의 없다. 현재 우리나라 자전거 인구는 800만명으로 추산되지만 국내 5대 보험사를 통틀어 자전거 보험 가입자는 5,000명 안팎이다. 자전거 보험 가입 시 본인 피해 보상은 물론 피해상대방에게 500만~1억원 수준의 보상을 해주게 된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자전거 보험이 정작 자전거도난 등의 피해를 보상해주지 않고 사고 시에도 일반 상해보험과 다른 점이 없어 보험 가입자가 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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