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어제 발표한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 재수사 결과는 무척 실망스럽다. 이 사건을 기획하고 지시한 몸통은 누구인지,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이명박 대통령은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 관련 공무원 입막음에 쓰인 돈의 출처는 어디인지 등 사건의 핵심에는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3개월간 수사했다는 결과가 고작 이 정도라니 어이가 없다. 검찰은 도대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기에 삼척동자가 보기에도 수준 미달인 이런 수사결과를 내놓는가.
검찰의 수사결과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 5명을 기소한 게 전부다. 추가로 드러난 윗선은 없었고, 새로 밝혀진 사실도 없다. 그나마 나온 내용이 지원관실이 사찰을 진행한 500여건의 사례 수사결과인데, 거의가 단순 동향 보고여서 범죄행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전 차관을 옭아맨 혐의라는 것도 2008년 경북 울주군 산업단지 승인신청과 관련, 울산시청 공무원들을 감시하도록 지시한 것뿐이다. 불법사찰을 집행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산파였고, 이 조직을 이끈 비선조직 '영포라인'의 실세인 그의 역할이 이 정도였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그러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대통령실, 대통령까지 이어지는 증거인멸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개입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청와대가 몸통임을 시사하는 증거와 정황이 한둘이 아닌데도 면죄부를 주기에만 급급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2008년 진경락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작성한 문건에는 '특명사항은 청와대 비선을 거쳐 VIP 또는 대통령실장에게 보고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 대통령이 "보고서를 밤을 새우다시피 읽을 정도로 좋아했다"는 증언도 나온바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개입의 확실한 증거로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이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에게 관봉 5,000만원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관봉 출처를 조사했으나 출고 은행과 일시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어물쩍 넘어갔다.
이런 수사결과를 보면 검찰이 재수사를 시작할 때부터 넘어서는 안될 선을 스스로 그어놨던 게 아닌가 여겨진다. 불법사찰 축소ㆍ은폐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권재진 법무장관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결국 특검이 됐든 국정조사가 됐든 또 한번의 재조사로 전모를 낱낱이 밝혀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드러나는 부실수사의 책임은 전적으로 검찰이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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