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사전피임약은 처방전이 있어야 하고, 응급피임약은 처방전 없이 내년 8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는 내용의 의약품재분류안을 발표했다. 이 땅의 어머니 중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발표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는 바이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는 30만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회원 대부분이 어머니다. 가정의 수호자로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분류하는 것은 절대 반대한다. 사전이든 사후든 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하는 것은 도덕 윤리에 어긋난다. 피임에 대한 인식이 낮은 우리나라에서 자칫 청소년이나 대학생들이 고용량 호르몬제를 오남용 하게 될까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특히 응급피임약은 일반 먹는 피임약의 10~15배에 달하는 고용량의 호르몬이 함유돼 있어 부작용이 많으면서도 피임효과는 낮다. 응급피임약을 복용한 다섯 명 중 한 명은 구토 증세를, 두 명 중 한 명은 메스꺼움을 경험하고 세명 중 한명은 출혈을 경험한다. 게다가 응급피임약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체내 호르몬 농도가 높아져 여성의 생리주기에 심각한 장애를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오남용으로 내성을 일으키기 쉬운 위험한 약인데, 우리 아이들이 응급피임약을 손쉽게 구입해 고용량 호르몬제를 상습적으로 복용한다면 아이들의 건강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성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에 대한 책임의식까지도 희미해질 것이다. 만약 내 딸의 가방에서 응급피임약이 여러 개 나왔을 때 어떤 마음일까. 응급피임약을 먹었는데도 임신이 지속되면, 현행법상으로는 불법인 낙태 시술을 내 딸에게도 권하겠는가.
제대로된 교육도 없이 우리 자녀들에게 무분별한 성 노출이 증가되고 있는 상황에서 응급피임약이 일반약으로 전환될 경우 오히려 올바른 피임 문화를 정착시켜 불법낙태를 근절하려는 노력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은 너무나도 확실하다. 응급피임약은 말 그대로 응급 상황에 한해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현재의 환자상태와 차후의 피임에 대한 철저한 상담과 피임교육을 하고 처방 받는 것이 옳다.
우리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는 더 이상 구세대적인 주먹구구식의 피임법을 혼자 찾아 헤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좀 더 피임문화가 성숙되고 일반 피임약의 복용이 증가된 다음에 전환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라도 어린 나이부터 피임 및 성교육에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피임교육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청소년의 성 개방 속도가 나날이 빨라지는 가운데, 피임에 대한 교육은 등한시되고 있고 많은 학생들이 인터넷이나 친구에게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무분별하게 접하고 있어 성범죄 우려도 커지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인공 임신 중절률은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비정상적으로 높다. 응급 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한 선진 국가의 사례를 보자. 응급 피임약의 접근성을 높인다고 해서 낙태율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무방비한 성행위만 증가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응급 피임약의 접근성만 높이는 것은 낙태율을 낮추는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분별한 성의식을 부추길 수 있다.
피임교육이 제대로 정립된 유럽 선진국에서도 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에 대해 아직까지 찬반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아직 피임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논의는 시기상조다. 우리나라의 엄마들은 이 땅의 귀한 자산인 우리 자녀들에게 이제라도 보다 안전하고 올바른 피임권리를 찾아주고 싶다.
김천주 대한주부클럽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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