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술자리에서 자신을 중도우파라고 외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아버지의 극단적 우파성향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재설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쭉 듣고 보던 아버지의 정치관을 대부분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차기 대권주자 한 후보를 지지하지만 자신은 아버지처럼 무턱대고 한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또 그 이후에 "좌파들 때문에"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요전에 '종북' 이라는 단어를 새로 배워 '좌파'를 '종북주의자'로 대체해 이야기 했다.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성품이 좋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다. 나도 물론 그에 동의한다. 그는 평생을 정직하고 소탈하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나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마다 일종의 정치 전도사로서 나를 전도하려고 했다. 그는 나와 대화할 때마다 신문기사들을 예로 들었다. 잘 생각해보면,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일종의 언론이었다.
정권이 바뀌고 한 일간지는 노무현 정권 시절 코드인사에 대한 비판 기사를 수없이 쏟아냈다. 그 아래에서 실제로 이번 정권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코드인사들을 현직에서 걷어냈다. 그 위로 모든 악재를 구정권의 탓으로 돌리던 언론들이 있었다. 덕택에 구정권에 대한 보수층의 적개심은 끝없이 치솟아 올랐다. 그가 죽은 뒤에도 보수층의 뇌에 각인되어 있다. 총선이 끝나고 나서 그 일간지의 전략이 서서히 노출되고 있다. 한 세력을 좌파적 성향을 가진 정당의 개념에서 주사파, 즉 간첩이 국회를 장악할 수도 있다는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군사독재시절 잊을만 하면 터지는 간첩사건처럼 이 종북논리는 국민들의 머리에 각인되고 있다. 이건 실로 섬세한 작업이다. 거대한 선점력을 바탕으로 주제를 정한다면 다른 언론들이 거기에 동참해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 버렸다.
군복무시절 제일 괴로웠던 것은 매주 수요일마다 강당이나 소대에 모여 진행되는 정신교육이었다. 내가 상병을 달 즈음에는 고정간첩들이 반미감정을 부추겨 시위를 조장하고 그 영역을 넓혀 웹상에서까지 시민들을 선동한다는 내용에 대부분 할애됐다. 병장 전역 즈음에는 노골적으로 시위대 중 일부를 좌파성향의 친북파로 단정하고 그들이 반미감정을 퍼트려 시민들이 정신교란을 당한다는 내용들이 나왔다. 병사들은 정신교육이 끝나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감상문과 소감문을 써내야 했다. 소감문을 써내고 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쓰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소감문은 일종의 자동기술이 된다. 일종의 각인 작업이었다. 각인은 모든 사물을 오해하고 확실한 선입관을 갖게 하며 그래서 올바른 판단을 마비시킨다.
한 언론은 지금 우리의 시야를 장악하고 그들의 흐름을 끊임없이 각인시키고 있다. 겁나는 일이다. 몸집이 커진 언론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성향을 굳히기 위해 쉴 틈도 없이 우리를 흔든다. 사소한 사건 사고부터, 교육문제, 연예인의 성범죄까지 사건의 크기를 조절해가면서 우리의 정신을 빼놓고 있다. 물론 핵심적 요소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그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자본을 끌어 모아 몸집을 불리고 보수이념을 세상에 각인시키는데 있다. 커다란 광각렌즈를 장착해 사회 전체의 흐름을 통제하려고 하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정권의 핵심은 위장술이라도 배웠는지 꽁꽁 숨어 보이지도 않고, 터졌던 비리들도 슬슬 마무리 되고 있다. 이 언론사도 슬슬 다음 작업을 준비 중 인것 같다. 그들은 렌즈를 좌파에서 종북으로, 종북에서 주사파로 바꿨다. 이제 좌파의 근간이 1980년대 학생 운동권 쪽으로 총구를 돌릴 것이다. 아니, 나정도의 얇은 지식의 사람도 예상하는 방향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문익환 목사와 문성근이 나란히 찍은 사진을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의 말로 이것을 프레임이라고 부른다. 이 프레임은 늘 너무나도 성공적이다.
천정완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