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3.82%→3.77%→3.75%.' NH농협은행의 대표 상품인 '채움정기예금'(1년 만기 기준)의 최근 한달 간 금리 변화다. 올해 초 연 4.0%(3.97%)에 육박했던 금리는 지난달을 기점으로 속절없이 하락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이 새내기 직장인들을 겨냥해 선보인 'KB국민 첫 재테크적금'의 기본금리는 연 4.5%이고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0.5%를 덤으로 얹어준다. 하지만 ▦가입 시점에 적립식ㆍ거치식 예금상품이 없어야 하고 ▦계약기간 3년간 모바일뱅킹 이체 실적이 있어야 하며 ▦만 18~38세 이하만 가입 가능한데다 ▦저축금액도 월 30만원 이하로 제한되는 등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부실 저축은행 퇴출과 글로벌 경제위기 등으로 갈 곳 잃은 돈이 몰리면서 '슈퍼 갑'이 된 은행권이 목돈 굴리기 상품 금리를 줄줄이 낮추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수시입출금 통장, 적금 등 4~5%대 금리를 주는 목돈 모으기 상품이 많다'며 고객들을 유혹하는데, 우대금리를 온전히 적용 받으려면 여러 장벽을 넘어야 해 고객 입장에선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12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최근 '국민슈퍼정기예금' 1년짜리 금리를 연 3.90%에서 3.88%로 내렸다. 신한은행도 한 달 전만 해도 연 3.85%이던 '월복리 정기예금'의 금리를 0.05%포인트씩 두 차례나 인하했다. 4%대 이율을 유지하던 하나은행 역시 '하나e-플러스정기예금'의 금리를 3.90%로 낮췄다.
한 은행 관계자는 "증시 불안과 부동산 침체가 지속되면서 은행으로 자금이 몰리고는 있지만, 대출 실적이 예전만 못하고 마땅히 투자할 곳도 없어서 예금 금리를 낮추는 게 불가피하다"며 "대신 고객들이 만족할만한 수준의 고금리를 주는 다른 상품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예대마진 장사가 신통치 않은 탓에 예금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지만 한편에선 고수익 상품 개발에도 매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은행들이 내놓는 고금리 목돈 모으기 상품의 경우 무리한 조건들이 붙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3년 기준으로 최대 4.8%의 이율을 보장한다는 신한은행의 '신한 월복리 적금'은 고객이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하거나 신한카드 결제계좌를 신한은행으로 지정해야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다. 우리은행의 '우리잇(it)적금-소다'는 2년 기준으로 우대금리 0.5%포인트를 포함해 최고 연 4.5%의 금리를 제시하지만 인터넷뱅킹이나 스마트뱅킹 가입(0.1%), 10만원 이상 자동이체 등록(0.1%), DFD패션그룹 소속 브랜드 매장에서 제품 구입 후 쿠폰 받기(0.3%) 등의 '숙제'를 해야 한다. 해당 은행의 또 다른 상품을 적극 이용하지 않으면 우대금리는 꿈도 꾸지 못하는 셈이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의 '두드림2U통장'의 경우 자유입출금 상품인데도 금리가 4%가 넘는다고 홍보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금리가 입금 첫 달엔 연 0.01%, 2~6개월엔 4.10%, 그 이후엔 3.30%가 적용된다. 게다가 먼저 들어왔던 돈이 먼저 빠진다는 개념의 '선입선출'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통장 본연의 성격대로 입출금을 수시로 하면 순수 예치 기간이 한 달을 못 넘겨 사실상 이자는 0.01%밖에 못 받게 된다는 얘기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자금이 풍부해진 은행들이 목돈을 단기간 굴리는 예금상품 금리는 약삭빠르게 낮추고, 대신 우대금리를 내세워 목돈을 모으는 장기 상품 쪽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며 "하지만 막상 뜯어보면 혜택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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