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 열리는 세계개발자회의(WWDC)는 애플의 연중 최대 행사. 애플은 전통적으로 이 행사를 통해 야심작들을 공개해왔다. 아이팟도 아이폰도 아이패드도 모두 WWDC에서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WWDC에 대한 스티브 잡스 창업자의 애정과 관심은 각별했다. 생전에 잡스는 청바지에 검은 터틀넥 셔츠를 입고 WWDC 단상에 올라, 특유의 자신감과 유머가 섞인 말투로 애플의 역작을 소개했다. 그의 마지막 무대도 WWDC였다. 사망하기 불과 4개월 전, 이미 병색이 완연한 상태임에도 잡스는 작년 6월 WWDC에 참석해 또 하나의 역작 아이클라우드를 직접 소개했다.
11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애플의 23번째 WWDC가 열렸다. 잡스 사망 이후 첫 WWDC였다. 세간의 관심은 이번엔 어떤 혁신 제품이 소개될지, 새 스마트폰 아이폰5가 공개될지, 또 팀 쿡 CEO는 이 이벤트를 어떻게 이끌지에 쏠려 있었다.
하지만 아이폰5는 없었다. 팀 쿡은 새 모바일운용체제(OS)인 'iOS6'와 노트북 '맥북프로'를 소개했지만, 잡스 시절의 열광과 감동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잡스는 관중들을 흥분시키는 음악을 배경으로 등장, 화려한 연설을 펼쳤다. 프레젠테이션 자체가 '드라마'라는 평가였다. 하지만 팀 쿡은 '네가티브'전략을 택했다. 그는 아이폰이 등장해 라이벌 삼성전자를 조롱하는 동영상으로 막을 열었다. 동영상 속에서 아이폰의 음성인식기능인 '시리'는 "난 매우 흥분되는 삼성의 신제품을 좋아한다. 휴대폰이 아니라 냉장고"라고 말했다.
팀 쿡의 기조연설 이후 부사장들이 나와 시리 기능을 강화한 iOS6와 맥북프로 등을 가을에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시리가 애플이 공을 들이는 기능이긴 하다. 지도 기능을 덧붙여 음성으로 길안내를 하면 네비게이션 시장을 차지할 수도 있다. 한국어 지원도 된다. 하지만 시장의 시선은 아이폰5에 쏠려 있었는데, 그 얘기는 아예 없었다. 행사를 지켜본 이혁준 제누스 이사는 "잡스의 번뜩이는 영감이 사라져 과거처럼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고 평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달라진 WWDC의 풍경이 지금의 애플을 말해준다"고 했다. 잡스 시절의 혁신, 열광, 흥분, 감동 같은 것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트위터에서는 애플 직원들이 잡스를 추억하며 현재 경영진을 비교한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잡스는 창의력을 위한 영감과 방향을 제시한 반면, 현 경영진은 직원들의 업무 하나하나를 모조리 챙기고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잡스가 떠나면서 애플도 이제 보통의 관리형 기업으로 바뀌는 느낌"이라며 "과연 과거와 같은 혁신적 제품들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아이폰5는 LTE 칩 문제가 해결되는 가을쯤이나 출시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갤럭시S3와 정면대결도 그만큼 늦춰지게 됐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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