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이노경(38)씨의 행보는 현재 우리 음악에 주어진 하나의 가능성을 인상적으로 대변한다. 지난해 4집 'Match Maker' 발매 기념으로 펼쳤던 재즈 클럽 공연에서는 드럼이 아니라 장구를 동원, 새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번 5집 'I-Tori'는 알리는 정도가 아니라 선언을 하는 수준에 달한다.
'토리'란 지방에 따라 각각 특색 있는 유파를 뜻한다. 그 앞에 나(I)라는 말을 달았다. 나만의 유파라는, 강한 자기 선언이다. 1999년 보스턴의 버클리(Berklee) 음대에서 재즈 피아노과 재학중 전환점이 찾아 왔다. "MIT 공대생들의 사물놀이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2001년 귀국했어요."
멈출 수 없는 길이었다. 자기만의 길을 찾고 있던 그는 2007년 울산재즈페스티벌에 가서 아르헨티나의 탱고 밴드 공연을 보고 월드뮤직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연스레 국악의 길에 들어선 그는 자신의 음악이 세계를 지향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의 발전적 행보는 전략적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또박또박 장르화할 수 있다. "4집이 국악적 장단에 재즈적 화성으로 이뤄졌다면, 5집은 서양 악기의 리듬에 국악적 선율을 합친 거죠." '애수의 소야곡' 등 트롯의 명곡을 재즈화한 2008년의 3집 'Cat Trot' 이후 구체화된 길이다.
5집은 장구, 피리, 태평소, 판소리 창에다 랩까지 가미된다. 그는 "조선 중기 학자 신광한이 쓴 한문 소설집 '기재기' 중 '최생우진기'를 랩으로 표현한 'Utopia'가 가장 중요한 곡"이라고 했다. 모 심을 때 부른 노동요 중 하나인 메나리 토리조의 '상주함창'을 자기화한 'M - Tori' 8곡 역시 독특한 자기 선언서다.
부산대 심리학과(92학번), 버클리 졸업(피아노 석사), 퀸즈칼리지에서 국악 재발견, 중앙대 국악과 석사. 일견 복잡한 그의 공부길이다. 지금은 대학 10곳의 강사, 경북대 등 2곳의 겸임 교수다. "단선율 위주의 연주에 볼륨감을, 퓨전의 완급을 보완하자는 거죠." 그가 국악에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다고 믿는 부분이다.
일견 위험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길이다. 피아니스트로 2010년 세종국악관현악단과 했던 작업이 그랬다. "1집 'Flower You'에 발표했던 재즈곡을 국악 관현악곡으로 편곡해 연주한 자리였죠. 순환호흡법을 이용한 피리와 태평소 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이번 5집이 그래서 나왔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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