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효가 또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중국의 금리 인하처럼 스페인 구제금융도 '반짝 효과'에 그쳤다. 스페인 은행 20곳의 신용등급이 강등됐고 스페인 국채 수익률은 한계선인 7%에 근접했다. "시간을 벌었다" "파국은 면했다"는 기대감은 순식간에 "근본 해법이 아니다"라는 비관론으로 바뀌었다. 이러다 백약이 무효인 국면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12일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유동성 위기를 이유로 스페인 3위 은행 카이사와 4위 방키아 등 스페인 은행 18곳의 신용등급을 강등한다고 밝혔다. 피치가 전날 스페인 1, 2위 은행인 방코 산탄데르와 방코 빌바오 비스카야 아르헨타리아의 장기신용등급을 두 단계씩 강등한 것을 포함하면 이틀 만에 1~4위를 포함한 20개 스페인 은행의 신용등급이 깎인 것이다.
스페인 은행에 구제금융을 투입한다는 소식이 며칠 만에 악재로 판명나면서, 스페인 국채 금리도 수직 상승했다. 지난 주 6% 근접 수준에 머물렀던 스페인 국채(10년물) 수익률은 11일 6.51%로 올랐고 12일에는 1999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창설 이후 최고 수준인 6.81%를 기록했다. 시장에서 스페인이 견딜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보는 7%에 바짝 다가선 것이다.
적어도 단기 호재는 될 것이라는 시장 예상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단 하루에 그치고 만 것은 지금 유로존이 앓고 있는 병이 한 두 가지 처방만으로 나을 수 없는 만성질환인 탓이다. ▦과연 1,000억유로로 충분한지 ▦결국엔 은행만이 아니라 전면적인 구제금융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닌지 ▦그리스, 아일랜드 등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긴축 축소 요구를 하지 않을지 등의 불안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일시적인 기대감을 뒤덮어 버린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은행 지원이지만 결국엔 스페인 정부의 빚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시장에 또 다시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스페인의 전면적 구제금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불똥은 '피그스(PIIGS)' 국가 중 아직 구제금융을 받지 않은 유일한 국가인 이탈리아로도 튀고 있다. 결국엔 이탈리아도 위기에 처하지 않겠느냐는 회의론이 확산되면서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는 11일 전 거래일 대비 0.26% 포인트 오른 6.03%를 기록한 뒤 12일에는 6.28%로 다시 올랐다. 이탈리아 국채 금리가 6%를 돌파한 것은 1월 30일 이후 5개월여만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어떤 추가적인 조치들이 나온다고 해도 그 약효가 오래 가지 못하는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국의 금리 인하나 스페인의 구제금융 모두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조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잠시 덜어줄 진정제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근본 치료제는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장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17일 그리스 재총선도 마찬가지다. 구제금융에 따른 긴축과 개혁조건을 수용하는 우파 신민당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그 약효가 오래 지속되길 기대하긴 무리다.
결국 지금처럼 작은 조치 하나하나에 시장이 환호했다 실망하기를 반복하는 상황이 장기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부장은 "앞으로도 단 칼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며 "힘겹게 국면을 헤쳐나가는 상황이 2, 3년 정도 이어진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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