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은 현재 전 세계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에너지. 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세계는 물론 국내에서도 존폐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11월이면 월성원전 1호기의 설계수명이 끝난다. 이 원전 또한 폐쇄냐 가동이냐의 논란에 휩싸여 있다. 당장 5개월 앞으로 다가와 이제 존폐결정을 내려야 하는 월성1호기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지 긴급 점검해봤다.
지난 수 십 년간 세계는 '원자력의 시대'였다. 각국이 화력과 수력 대신 원자력발전소를 짓기 시작했고 선진국일수록 그 의존도는 더 높아져왔다.
12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현재 원전을 보유 중인 국가는 미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영국 등 30개국. 이들 나라에서 운영하고 있는 원전만 435기에 달하고 현재 65기가 추가 건설 중이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무려 96%(2010년 기준)에 달하는데도 세계 10위 에너지소비국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21기가 들어서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조력 같은 신재생에너지가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 세계는 원전산업 유지, 확대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하지만 작년 3월 원전은 거센 역풍을 맞았다. 일본 대지진, 그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도 원전반대 목소리가 없었던 게 아니었지만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수많은 환경단체가 원전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발전소 폐쇄를 강력히 주장했다. 실제로 사고 당사국인 일본을 비롯해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잇따라 원전 포기의사를 밝혔다. 에너지산업에서 20년 넘게 이어온 원전 르네상스 시대는 그렇게 저무는 듯 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1년이 흐른 지금, 세계 원전산업계엔 또 한번의 반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가장 강하게 반(反)원전 정책을 선언했던 독일은 여전히 "신규 건설은 물론 지금 있는 원전도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상당수 국가들은 원전유지정책으로 속속 돌아서고 있다. 원전 시장을 주도해 온 선진국과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전력수요가 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우선 미국이 34년 만에 신규 원전건설을 승인했다.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지난 2월 전력업체 서던 컴퍼니가 조지아주 사우스 어거스타의 기존 원전시설에 2기의 원자로를 추가 건설하는 계획을 승인한 것. 미 정부가 원전 신규건설을 허용한 건 1979년 스리마일 원전사고 이후 처음이다.
사고 당사국인 일본도 원전 재개를 서두르고 있다. 일본은 사고 이후 '원전 제로' 정책을 택했지만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어 멈춰선 원자로 50기 중 2기를 다시 돌려야 한다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그는 "후쿠이현의 오오이(大飯) 원전 3, 4호기를 재가동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의 이해를 다시 한번 요청한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은 전력난이 극심한 상황. 전기 때문에 해외로 공장을 옮기겠다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여름철은 다가오는데 현실적으로 전력난을 타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원전 운전기간을 최장 60년(40년 운영 원칙+20년 예외 허용)까지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원전 안전규정 강화법안을 승인했고, 현재 의회에서 심의 중이다.
이와 함께 최근 ▦캐나다도 포인트레프로 원전의 계속 운전을 승인했고 ▦미국(104기) 다음으로 많은 58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자국 내 전력소비의 75%를 원전이 담당하고 있는 프랑스도 올해 초 발간한 '원자력의 과거 현재 미래' 보고서에서 "원전의 계속 가동은 국제경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밝혔으며 ▦스페인 역시 가장 오래되고 2013년 7월 영구 폐로가 결정된 'Garona' 원전을 2019년까지 6년 더 연장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여기에 신규 원전사업을 중단한 중국 역시 늘어나는 전력수요와 환경오염의 대안으로 원전 심사와 착공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신흥 개도국인 브라질과 인도 등도 안전성 강화를 전제로 원전 계획을 유지하고 있다.
각국 모두 원전이 '최선의 에너지원'이 아니라는 점은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마땅한 대체 에너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원전은 '최선 없는 차선'이란 점엔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이중삼중의 철저한 안전관리, 지역주민을 비롯한 반대론자들에 대한 설득을 전제로 원전은 계속 가동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흐름이다.
세계원자력협회(WNA)는 오는 2030년 세계 원전시설 용량이 지금보다 70% 가량 증가한 614GW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마노 유키야 IAEA 사무총장은 "전 세계가 2030년까지 350기의 원전을 새로 건설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반대만이 능사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 전문가 의견 "원전 정보 투명 공개… 무조건 폐쇄보다 징검다리 역할"
원전에 대한 논란의 연장선상에서 월성1호기의 계속 운전 역시 찬반이 엇갈린다. 반핵관련 단체나 전문가, 지역주민들은 여전히 즉각적인 폐쇄를 요구하고 있지만, 원전 전문가들 사이에선 철저한 관리와 이에 대한 투명한 공개를 전제로 계속 운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캐나다원자력공사인 칸두에너지(CANDU ENERGY)의 프랭크 이 수석 엔지니어는 "한수원이 월성1호기의 발전설비를 잘 유지해 계속 운전할 수 있는 안전수준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2년여에 걸쳐 월성1호기의 대규모 설비개선은 철저한 점검 뿐만 아니라 통상적인 계획예방 정비 중에는 교체하기 어려운 부품들까지 모두 바꿨기 때문에 안전엔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원자력 1세대로 꼽히는 장인순 대덕원자력포럼 회장은 "월성발전소는 그 이용률이 세계 탑 클래스에 속한다"며 "30년 전에 건설할 때는 많은 컨트롤 시스템이 아날로그였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디지털화돼 훨씬 더 안전하게 운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가 아직 상용화가 되지 못한 상황에서 원전의 무조건적 폐쇄보다는 '징검다리'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신재생에너지는 현 단계에서 국내 환경과 맞지 않다. 제3의 에너지가 나올 때까지 원자력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계속 운전 결정에 앞서, 운전 중에라도 지역주민, 반핵단체들에 대해 한수원이 소통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김영평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월성1호기에 대한 IAEA의 안전점검 결과에 대해선 국제기구가 조사를 진행한 만큼 그 결과에 대해선 신뢰해도 좋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한수원이 향후 운영과정에서 좀 더 소통하고 원전정보를 한치의 숨김없이 투명하게 공개하는 노력을 더욱 많이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 IAEA 로버트 크리바넥 점검단장 "월성1호기는 국제적으로 우수 사례"
오는 11월로 30년의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월성원전 1호기는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부터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전히 해당 지역 주민들과 반핵단체는 폐쇄를 주장하고 있고 최종 결정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내리게 되어 있지만, IAEA 조사결과가 나온 만큼 월성1호기는 수명연장 수순을 밟게 될 전망이다. 앞서 고리1호기의 전례에 비춰보면 월성1호기도 10년 정도 수명연장이 유력한 상태다.
IAEA 소속 로버트 크리바넥 점검단장은 월성1호기의 현재 상태에 대해 "국제적으로 우수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일부 전기계통 기기와 발전설비 등에 대해선 개선을 요구했지만, 이 부분만 고치면 수명연장에는 문제가 없다는 게 IAEA측 판단이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역시 "원전 반대론자들의 주장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과거보다 훨씬 더 철저하고 엄격하게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수원이 월성1호기가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이렇다. 월성1호기는 지난 2003년 실시한 주기적안전성평가(PSR)의 후속조치로 27개월간의 대규모 설비개선 공사를 통해 압력관 등 주요부품을 교체했고, 열 전달 및 내부부식 저항 수준도 대폭 강화했다. 이어 2009년에는 안전계통 설비개선, 경년열화(운전연수 경과에 따른 설비상태) 등 총 179건의 설비개선을 진행했다. 특히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수소 폭발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수소제어설비(PAR)도 새로 설치하는 한편 전체 전원상실에 대비해 이동형 비상발전기를 구축했다.
이태호 한수원 발전본부장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노후원전의 안전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게 사실이지만 이를 계기로 오히려 월성1호기는 더욱 철저하게 설비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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