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7시. 서울 마포구와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잇는 서강대교 북단에서 인도를 접어 들자 ‘생태계 보전지역’이란 이정표에 경적 금지 표시가 나타났다. 다리 한 복판에 외롭게 서 있는 가로등 위엔 새 한 마리가 앉아 쉬고 있다 곧장 다리 밑 밤섬으로 모습을 감췄다. 최근 국내 한 영화의 배경으로도 등장한 이 밤섬은 밤 알을 까놓은 것처럼 생겼다 해서 율도(栗島)로도 불리며, 서울시가 1999년부터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관리중인 도심내의 대표적인 생태공간으로 꼽힌다. 바로 이 한강 밤섬이 람사르 습지로 지정돼 도심 속 자연의 모습을 체계적으로 보존ㆍ관리 받게 된다.
서울시는 밤섬이 수도권에서 최초로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다고 11일 밝혔다.
2010년 서울시가 환경부에 람사르 습지 등록을 요청한 후 국토해양부가 하천 관리를 이유로 반발해 무산됐으나, 올해 1월 환경부가 등록신청서를 람사르 협약 사무국에 제출해 받아들여진 것이다. 밤섬은 우리나라에서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18번째 지역이다.
람사르 습지는 ‘물새 서식지로서 중요한 습지보호에 관한 협약’인 람사르 협약에 따라 생물지리학적 특징을 가진 곳이나 희귀 동식물종의 서식지 또는 물새 서식지로서 중요성을 가진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지정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경남 창녕 우포늪 등 17곳이 지정돼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 자체적으로 이미 1999년에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었으나 람사르 습지로 인증 받게 돼 보다 엄격하게 규제ㆍ관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정수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은 “밤섬 자체가 하나의 소 생태계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철새뿐 아니라 다양한 생태계 관찰에도 중요해 람사르 습지 지정은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 부소장은 또 이번 지정으로 한강 수중보가 철거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밤섬이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면 이 지역에 대한 국가적 보전 의무가 생겨 여름철마다 밤섬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계를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부소장은 “밤섬의 범람을 막기 위해 수계를 낮추려면 신곡 수중보 등을 철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국가적인 보존 계획을 세워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밤섬은 1968년 여의도 개발을 위해 필요한 토사와 석재를 얻기 위해 폭파했으나 이후 토사가 쌓여 자연 복원되면서 도심 속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자리잡았다. 현재 밤섬에는 억새, 갯버들 등 46과 194종의 식물, 멸종 위기종인 흰꼬리수리, 천연기념물 원앙 등 77종 9,782개체의 조류 그리고 천연기념물 황쏘가리 등 32종의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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