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급발진이란 정지상태에서 갑자기 출발하거나, 혹은 낮은 속도로 주행하는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속도가 붙는 상황을 말한다. 십 수년 전부터 한 두건씩 발견되더니 이젠 갈수록 횟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도 실체도 규명된 것이 없다. 그래서 '자동차의 미스터리'라고도 불린다. 자동차가 스스로 귀신이라도 홀린 걸까.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연간 한자릿수에 머물던 급발진 추정사고는 2010년 28건, 2011년 34건으로 늘어났으며 올해는 더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블랙박스가 보편화되면서, 사고 영상이 녹화돼 인터넷 등에 공개되자 운전자들의 공포는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결국 지난 달 9일 자동차 급발진 추정 사고 합동조사반을 운영키로 결정했다. 자동차 회사와 학계 민간단체들을 망라해 원인규명에 나서겠다는 것. 그리고 이날 조사의 모든 과정을 언론에 공개하겠다고까지 밝혔다.
이에 따라 최근 발생한 6건의 급발진 추정 사고 중 차주가 공개를 원하는 3건에 대해 사고전후의 각종 상황을 기록한 블랙박스, 차량사고기록장치(EDR)와 브레이크 제어장치(BOS), 전자식가속제어장치(ETCS), 엔진제어장치(ECU) 등 각종 전자제어장치의 이상 작동 여부를 점검할 방침이다. 조사결과는 다음달 공개된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는 높지 않다. 지난 1999년에도 급발진 관련 민관합동 조사가 이뤄졌지만 결국은 운전자 과실로 결론났다. 2004년 대법원도 "자동차 공학상 가속페달을 밟지 않은 상태에서 급발진이 일어나기는 어렵고 국내외 관련 기관의 연구조사 결과에서도 이는 인정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 독일 일본 등 다른 자동차 선진국에서도 급발진 사고는 여러차례 발생했지만 자동차 결함으로 인정된 사례는 전무하다. 업계 관계자는 "운전자의 상태와 주행 환경, 엔진첨가제 같은 관리의 문제 등이 맞물려 있어 차체 결함이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사안"이라며 "수천 번의 주행테스트를 거친 제품에서 그런 결함이 나타난다는 것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차체 결함이라고 주장하는 측 역시 여러 정황을 근거로 추론을 펼칠 뿐이다. 현재 가장 유력한 설은 '자동차라는 기계에 전자제품이 결합된 데 따른 부작용'이라는 시각. 급발진 사고가 ▦자동차에 전기장치가 장착되기 시작한 1980년부터 발생했으며 ▦수동변속기 차량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점 ▦디젤 차량에 전자제어장치가 부착된 10년 전부터 집중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점 등이 근거다. 즉 단순한 옛날 자동차에선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복잡한 첨단 전기ㆍ전자장치가 부착돼 자동차가 고급화되고 똑똑해지면서 생긴 결함이라는 것이다. 최근 나오는 신차들의 경우 차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 가운데, 전자제어장치가 30% 안팎을 차지할 정도다.
자동차 명장 1호인 박병일 신성대학교 교수는 "급발진 사고는 가속시 연료 주입량 조절이 전기신호로 작동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자동변속기 장착 차량은 자체 전자제어시스템에 결함이 없더라도 외부요인으로 전기신호가 왜곡되면서 순간적으로 연료가 과잉 공급돼 급발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자동차 회사들의 비협조가 원인규명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자동차 회사들이 사고기록장치(EDR)만 공개해도 원인규명이 가능하다는 것. EDR은 자동차의 충돌 사고를 분석할 수 있도록 차량 속도, 엔진 회전수, 브레이크 작동 여부 등 사고 전후의 운행정보를 수집해 저장하는 데이터 기록장치인데 지금까지 제조사들은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EDR 기록은 제조사에서만 확인 가능하다"며 "이번 합동조사 과정에서 자동차 제조사에 공개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최근 급발진 방지 시스템중 하나인 '브레이크 오버라이드' 장치를 모든 차량에 의무화 하는 법률을 시행했으며, 올해 9월부터 소비자가 원할 시 EDR 기록을 공개하도록 했다.
박 교수는 "정부가 법규를 통해 EDR 기록 공개를 의무화해 실체를 밝혀내고 제조사들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만이 소비자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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