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까지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피그스(PIGS)의 저주'가 완성됐다. 은행 구제금융이 완벽한 해법은 아니어도, 스페인 위기의 본질 중 하나가 자산시장 붕괴에 노출된 은행의 문제였다는 점에서 이번 유럽연합(EU)의 스페인 해법을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피그스를 PIGS가 아닌 PIIGS로 칭하는 이들이 보기에, 아직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심연의 바닥이 남아 있다. PIGS 4개국 국내총생산(GDP)을 다 합친 것(2조 1,375억달러)과 맞먹는 덩치(2조 609억달러)를 가진 남유럽 재정위기의 '끝판 왕' 이탈리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제거된 지금 시장의 시선은 온통 이탈리아에 쏠려 있다.
이탈리아마저 구제금융을 받는 상황은 아직까지는 개연성 차원으로 보는 것이 맞다. 10일 블룸버그통신 평가에 따르면 스페인과 비교해 볼 때 이탈리아 경제는 기초체력(펀더멘탈)이 튼튼한 편이다. 재정은 적자지만 금융비용을 제하면 수지를 맞추는 수준이고, 이탈리아 은행은 스페인 은행에 비해 건전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은행을 망친 부동산 거품도 심각하지 않은 수준이고 실업률(10%)도 스페인(24%)의 절반 이하로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위기설이 끊이지 않는 것은 '스페인이 무너지면 이탈리아도 무너질 것'이라는 시장의 믿음 때문이다. 자산전략전문가 니콜라스 스피로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이탈리아의 문제는 '스페인이 가는 곳에 이탈리아도 따라갈 것'이라는 관념"이라며 "금융시장에서 (두 나라를) 구별할 요인이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시장 참가자들이 현재의 경기 지표보다 향후 이탈리아 경제의 성장 전망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그 요인으로 꼽힌다. 제조업 성장 기반이 약하고 긴축 재정을 실시하는 이탈리아는 올해 1.7%의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심리적 요인과 저성장 전망이 합쳐져 이탈리아 국채를 기피하는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 재무부는 기존 부채 상환 등에 쓸 자금 350억유로를 매달 차입해야 하지만 6%에 가까운 국채 수익률 때문에 전보다 많은 부분을 국내 은행에 의지해야 한다. 120%에 이르는 GDP 대비 부채비율은 주요 선진국 중 일본(200% 이상)에 이어 두 번째로 심각한 수준이다.
이탈리아 은행이 지금은 건전하지만 국채 부담이 커질 경우 스페인 은행의 전철을 따르지 말란 법도 없다. 지난달 무디스가 유니크레디트 등 26개 이탈리아 은행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것도 높은 국가 부채비율이 금융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우려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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