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불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대규모 유혈충돌이 발생해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아웅산 수치의 원내진출 및 정치범 석방으로 상징되는 미얀마의 전향적 민주화 조치가 이번 종교간 충돌로 상당 부분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은 10일 밤 TV 연설을 통해 종교 유혈충돌이 발생한 서부 라카인주 일원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 지역에 군대를 파견해 치안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세인 대통령은 "라카인주에서 끝없는 복수와 폭력사태가 계속된다면 (유혈사태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위험이 있다"며 "사태의 확산은 이제 막 시작한 우리의 개혁에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3월 세인 대통령 취임 후 미얀마에서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된 것은 처음이다.
앞서 라카인주에서는 8일 이슬람교도로 추정되는 세력이 폭동을 일으켜 500여채의 불교도 가옥이 불타고 불교도 등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3일 무슬림 주민 10명이 300여명의 불교도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한 데 따른 보복으로 추정된다. 당시 불교도들은 무슬림 남성이 불교도 소녀를 성폭행했다는 유인물에 자극받아 무슬림 주민을 집단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폭동 이후에도 크고 작은 충돌이 발생하면서 현지 상가는 모두 철시했고 해당 지역에는 야간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접한 라카인주는 미얀마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불교도가 우세한 곳이지만 최근 방글라데시에서 불법 입국한 무슬림들이 늘면서 종교 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로힝야족이라 불리는 무슬림의 인구는 75만명(유엔 추정)으로 라카인 주민(州民)의 25%에 달하지만, 미얀마 정부는 이들을 정식 주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로힝야족과의 갈등은 지금까지는 라카인주 내부 문제로 치부됐지만, 이번 유혈 충돌을 계기로 미얀마 전역에서 반 이슬람 정서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도 일간 힌두스탄타임스는 10일 미얀마 제1의 도시 양곤의 불교성지인 쉐다곤 파고다에 600명의 라카인주 출신 주민들이 집결해 "벵골인(로힝야족)을 미얀마에서 몰아내라"며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