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을 보라."
전세계가 재정위기의 분수령이 될 17일 그리스 재총선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그리스 정치권이 스페인 구제금융을 놓고 아전인수식 공방을 하고 있다.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정당들이 스페인에 대한 1,000억유로(약 146조원) 구제금융 결정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앞다퉈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구제금융에 따른 긴축정책 이행을 주장하는 신민당이다. 안토니오 사마라스 신민당 대표는 10일 그리스 남부지역 유세에서 "스페인의 구제금융은 책임을 다했을 때 누리는 혜택"이라며 "이번 거래는 유럽연합 내에 잔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과의 관계를 끊고 그리스가 고립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좌파연합 시리자를 겨냥했다.
그러자 구제금융 재협상을 내세운 시리자가 맞받아쳤다. 이번에도 근거는 스페인이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대표는 "스페인의 상황 전개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사마라스가 말한 것과 정반대"라며 "우리가 존엄과 번영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유로존의 요구를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긴축을 거절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신민당과 시리자가 모두 스페인의 사례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스페인이 '긴축 없는 구제금융'을 받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정부 차원의 구제금융 신청을 하지 않는 '벼랑 끝 전술'을 사용했다. 결국 위기가 번질 것을 우려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들이 정부 대신 은행을 간접 지원하기로 했고 스페인 정부는 긴축재정 등 구제금융에 따른 가혹한 조건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스페인에 대한 조치에서 신민당은 구제금융 자체에, 시리자는 긴축 없는 조건에 방점을 각각 찍었다. 신민당은 유로존에 남아야 그리스가 구제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며 시리자는 스페인처럼 그리스도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의 구제금융이 그리스에는 악재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리스의 정치분석가 디미티리스 카초우다스는 "스페인의 구제로 그리스는 전보다 더 고립됐다"며 "유로존 핵심국가들이 위험이 약해졌다고 생각하며 그리스를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알아야 한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한편 그리스 정국 운영의 캐스팅 보트를 쥔 제3당 사회당의 에반젤로스 베니젤로스 당수는 민주좌파의 포티스 쿠벨레스 당수와 10일(현지시간)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유로존 잔류를 지지하는 정당들의 거국 정부 구성을 제안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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