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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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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52>

입력
2012.06.1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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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이 읽기 시작하는데, 도술을 잘 부리는 전우치가 사대부가의 잔치 말석에 앉게 되었는데 그들이 자못 교만하여 스스로 부자로 잘살고 있음을 자랑하니, 수박 포도 복숭아 등의 과일이 빠진 것을 지적하자 때가 바야흐로 여름철이 아니거늘 그런 것이 어찌 잔칫상에 오를 수 있느냐고 오히려 비웃었다. 전우치가 하늘로 올라가 선경에 이르러 온갖 과일을 따다가 잔치 자리에 던지자 모두 놀라며 상찬하는데, 전우치가 때는 이미 늦었다며 꾸짖는다.

이제도 사람을 업수이 여기겠소? 그대들이 이미 사람을 경모한 죄로 천벌을 입었을지라. 최 씨 박 씨 양인이 입으로는 비록 손사(遜謝)하는 체하나 속으로는 종시 믿지 아니 하더니, 최생이 마침 소피하려고 바지를 끄르고 본즉 하문이 편편하여 아무것도 없거늘 크게 놀라서, 이 어이한 연고로 졸지에 하문이 떨어졌는고? 하며 어찌할 줄 모르거늘 모두 놀라서 본즉 과연 민숭민숭한지라 크게 놀라, 소변을 어디로 보리요, 할 즈음 박생 또한 자기의 아래쪽을 만져 보니 역시 편편한지라. 두 사람이 경황하여 서로 의논하며, 전생이 아까 우리를 기롱하더니 이러한 변괴가 났구려, 장차 이 일을 어찌할 것이오, 하는데 창기 중 제일 고운 계집의 음문이 간데없고 문득 배우에 구멍이 났는지라 망극하여 어찌할 줄 몰라 하더라.

이 대목에 이르러 좌중은 참지 못하고 손뼉을 치며 크게 웃는다. 장면이 바뀌고 전우치의 휘황한 도술이 몇 차례 더 거듭된 뒤에 낭독이 모두 끝나니 주위에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여 어둑어둑해졌다. 저절로 자리가 파하는데 역시 점원 아이가 바구니를 돌려 엽전을 모아다 주었다. 연초전 주인은 서일수에게 물건값을 지불했는데 엽전꿰미가 제법 구렁이 사린 듯하였다. 서일수는 전대에 넣어 둘둘 말아서 허리에 차고는 기분이 양양하여 전방을 나섰다. 두 사람은 이제 저녁참이라 출출하기도 하고 목이 컬컬하기도 하여 바로 뒷골목의 피맛골로 들어섰다. 첫 다리에서 종루에 이르기까지 시전의 큰길 양쪽에 가마 한 채 엇갈릴 만한 골목이 있으니 고관대작의 행차가 뜨면 하정배 드리기 귀찮은 백성들이 슬쩍 뒷길로 피하기 알맞은 길이라 그렇게 불렀다. 피맛골은 저자 상인들이며 왈짜 오입쟁이 술꾼들이 저녁만 되면 몰려나오는지라 목로술집, 모줏집, 내외술집, 색주가 그리고 설렁탕, 추어탕, 고음탕, 개장, 황태탕, 선지탕 등속의 온갖 장국밥과 상밥을 파는 탕반 집과 철물교에서 파자교에 이르는 골목은 색주가들이 몰려 있었다. 서일수가 피맛골로 들어서며 호기 있게 말했다.

얼른 요기나 하구 일어서지. 술이야 나중에 지전의 흥정이 잘 되구 나면 모줏집에 가서 인정 칠 때까지 내가 냄세.

이신통과 서일수가 설렁탕 한 그릇씩 얼른 먹고 지전으로 찾아가니 주인이 어느 손님과 함께 기다리고 있다가 반색을 하였다. 손님이란 오십은 넘어 뵈는 머리와 수염이 희끗한 중늙은이로 의관이 멀끔하고 안색도 좋아 보였다. 그의 옆에 부담을 놓고 무릎 꿇어앉은 자는 아마 가노(家奴)인 듯하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서 지전 주인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이제는 염려 놓으십시오. 이분들은 지난번 과거 때에도 복시 급제를 따낸 실력이 있어서 내가 특별히 청하여 왔습니다.

주인이 허풍을 떨어 이야기하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들은 쑥스러워져서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하였다.

서수 대작도 이제 구하셨고 접은 모두 네 명이면 될 듯합니다. 지금 밖에서 대기하고 있습지요.

백 냥씩이라고 했던가?

시골 사람이 물으니 주인이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고, 염라국에서 미륵부처 만난 격이지요. 지금 몇백 냥 소리도 우습고 이름난 거벽 서수를 사려면 천 냥 돈이 들어간다는 말을 못 들으셨습니까?

그도 처소에서 얻어들은 소문이 있었던지 옆자리를 돌아보는데 하인이 얼른 부담을 선비의 무릎 아래로 밀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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