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 남쪽 섬 다네가시마는 일본 우주개발의 전진기지다. 우주센터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지난달 18일 오전 1시 39분 한국도, 일본도 흥분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한국 다목적위성 아리랑3호를 탑재한 일본 로켓 발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리랑3호는 미국 정찰위성급이라는 고해상도 카메라를 장착했다. 지상을 관측할 수 있는 능력이 기존 아리랑2호보다 크게 향상돼 고급 위성영상 사진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한다. 한국은 고기능 위성을 또 하나 갖게 됐다는 점에서 충분히 기념할만한 날이었다.
하지만 1970년 로켓 발사에 처음 성공한 일본이 새삼스럽게 이번 발사에 의미를 둔 이유는 뭘까. 이번 H2A 로켓 발사가 자국 위성이 아니라 돈을 받고 해외 위성을 탑재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H2A 로켓 발사는 정부 조직인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에서 관리해오다 2007년부터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민영화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미쓰비시는 이후 100차례 이상 상업 용도 위성발사 협상을 진행했지만 아리랑3호를 제외하고는 한 군데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일본은 로켓 선진국이지만 가격 경쟁력과 발사 성공 횟수 등에서 아직 유럽이나 미국에 밀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일본을 도우려고 일부러 비싼 돈 내고 아리랑3호 발사를 맡긴 건 물론 아닐 테다. 알다시피 이 사업은 아시아태평양전쟁 때 비행기 등 군수물자를 생산했고 당시 한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적절한 후생연금 지급을 외면하고 있는 이른바 '전범 기업' 미쓰비시와의 거래다. 수주 당시 쏟아진 비판을 정부가 감내해낼 수 있었던 것은 이 거래가 철저히 경제 논리에 따른 낙찰이었기 때문이다.
아리랑3호와 일본의 기상예보용 관측위성 시즈쿠를 함께 실은 H2A 로켓이 발사되는 그날 밤 마침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바다 건너 직선으로 100여㎞ 떨어진 "날이 맑으면 발사 때 불빛이 반짝 보일 거리"라는 규슈 남부 이부스키시에서 하룻밤을 묵고 있었다. 일본 국토교통성과 규슈관광진흥기구가 마련한 한국 기자 초청행사의 일원으로 참여해서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에서 한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기자들을 불러서 현지를 보여주는 일이 드물지는 않다. 하지만 그날 행사는 좀 특별했다. 모두 7개 현으로 구성된 규슈 지역 지자체들이 공동으로 '규슈 올레'라는 걷기 코스를 만들어 이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올레'라는 말은 물론'제주 올레'에서 따온 것이다. 대단한 금액은 아니지만 사단법인 제주올레에 이름 사용료와 코스 계발ㆍ운영 자문료를 지불하고 만든 것이다. 지난 2월 말 모두 4곳이 문을 열었고 올해 안에 몇 곳이 더 생긴다.
지난해 일본 대지진 이후 절반 정도로 줄어든 한국인 관광객을 복원해보려는 안간힘이라고는 해도, 여전히 문화적으로나 한국을 한참 낮춰 보는 일본 사람들이, 그것도 준정부 차원에서 한국의 이름을 그대로 빌려 관광상품을 만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국과 일본 간에는 풀어야 할 역사적인 응어리가 아직 많다. 독도를 둘러싼 영토문제는 언제나 한일 외교의 복병이다. 위안부 문제 역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한국과 일본 간에는 넘어서기 힘든 '기억'과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일본에서 '규슈 올레'를 두고 "아름다운 규슈의 자연을 한국놈들에게 팔아먹는다"는 비방이 나오는 것도, 아리랑3호 로켓 발사를 전하는 한국의 일부 방송이 굳이 컴퓨터 그래픽 동영상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장벽에도 불구하고 한일간의 협력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규슈 올레나 미쓰비시 로켓 발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설사 기억의 족쇄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하더라도 한일 협력의 가능성은 앞으로 더 열릴 것임을 이번 일들이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다.
김범수 문화부 차장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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