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출연했던 윤여정 선생님이 제 연기를 보시면서 그러시더라고요. 주변에서 '이승기의 재발견' 이라는 얘기가 나올 때 제법 잘한다고 하시면서, '너, 시청률까지 잘 나왔으면 어쩔 뻔했니'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스스로 잘 못 가는 걸 모를 때 그때부터 위기가 오는 거라는 말씀에는 뜨끔했어요."
가수로 배우로 예능MC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승기(25)에게 '더킹 투하츠'는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었다. 최근 종영한 이 드라마는 출발 당시 수목극 1위로 시작했지만 끝내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이승기는 '더킹'을 통해 호평을 받으며 극을 끌어가는 주연배우로서의 위치를 확실히 굳혔다. 드라마는 입헌군주제라는 독특한 설정 하에 천방지축 안하무인 남한 왕자가 북한 여군장교와 사랑을 하고 위기를 겪으며 진정한 국왕으로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정극과 로맨틱 코미디를 오가는 쉽지 않은 패턴이었지만 이승기는 호감형 캐릭터를 만들어 내며 자신의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드라마 종영 이후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콘서트를 마치고 돌아온 이승기를 7일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승기는 자리에 앉자마자 강렬한 조명을 너무 많이 받다 보니 안구 건조증을 달고 산다며 "직업병이에요"하고 눈에 안약을 넣었다. 빽빽한 스케줄에 지칠 만한데 2004년 데뷔 이후 한번도 공백기가 없었다고 하자 옆에 있던 소속사 관계자가 "드라마 종영 날 기어이 소속사 사무실에 나와서는 '쉬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하는 게 이승기"라고 말한다.
'더킹' 역시 일본 진출 스케줄이 잡혀 있던 터에 "놓치기 아까워 무리를 한" 작품이었다. "아, 이건 그냥 해야겠구나 했어요. 이재규 감독님에 대한 믿음도 있었지만 이순재 윤여정 윤제문 하지원씨 등이 캐스팅 됐다는데."
이승기가 연기한 '더킹'의 왕자 이재하는 능청스럽고 얄밉게 뺀질거리면서도 왕자의 본분을 지키는 카리스마를 지녔다. 전작 '찬란한 유산'이나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에서 주연배우로서 제 몫을 해내며 존재감을 보였다면 이번엔 한층 성숙한 연기를 보였다. '이승기가 이렇게 연기를 잘 했냐'는 얘기까지 들을 정도다. 특유의 순발력으로 번뜩이는 장면들을 만들어 내는 건 이승기의 특기. 인상 깊은 장면을 묻자 시경(조정석)이 죽고 오열하는 장면을 꼽는다. "태종대를 배경으로 한 촬영이었는데 해가 막 넘어가려고 해서 15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었어요. 제 분량은 5분쯤이었는데 제가 잘해서 NG 없이 한번에 갔죠.(웃음)" 이승기는 인터뷰 내내 다양한 표정과 리액션을 보여주는 등 밝은 모습이었다. "순발력이나 순간순간 나오는 표정이 풍부해진 건 다 예능출연 덕분"이라며 연기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드라마 종영 직후인 지난 1일 일본 도쿄 부도칸에서 '2012 이승기 재팬 퍼스트 라이브-희망'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단독공연도 성공적이었다. 일본 데뷔 3개월 만에 이뤄진 이 공연은 한국 가수로서는 최단 기록이다. 한류 붐이 한창일 때 이승기는 국내의 인기에 안주한다는 인상이 짙었지만 이승기는 "국내 활동이 너무 바빠서 나갈 여력이 없었을 뿐"이라고 했다. 이번 콘서트는 "일본에서 활동도 거의 없는데 따르는 일본 팬들에 대한 고마움이 커서" 기획하게 됐다. 2년 전 드라마 '찬란한 유산'이 후지TV를 통해 방영된 이후 부쩍 일본 내에서 이승기에 대한 관심도가 커졌다. "그때 일본 한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에 갔었는데 아주머니들이 웃으시면서 '두 시에 나오는 드라마 주인공'이라며 말을 거시더라고요. 그때 낮 방송인데도 시청률이 10%이상으로 잘 나왔더라고요." 이번 공연은 준비기간이 1주일 남짓밖에 허락되지 않아 촉박하고 조급한 마음이었다.
"8,000명이 모인 무대였는데, 그냥 일대일로 노래를 하고 듣는다고 생각했어요. 속으로는 이런 자리에서 노래 못 부르면 욕 바가지로 먹겠다 걱정도 했죠. 그런데 노래가 끝나자 순간적으로 와~하는 환성이 터지더라고요. 내 모든 떨림이 전달됐구나 싶어서 안도했죠."
7월 대만과 8월 싱가포르에서 팬 사인회를 여는 등 활동 반경도 더 넓힐 계획이다. 인터뷰 전날 지인들과 동네에서 축구를 했다는 이승기는 사실 정해진 연예활동 외에는 생활이 단조롭기로 유명한 연예인이다. 요즘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모니터링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그는 김선아 주연의 '아이두 아이두'와 손현주 김상중의 카리스마가 빛나는 '추적자'를 특히 즐겨보고 있다고 했다.
"이순재 선생님이 드라마 찍으면서 '너 연기 더 했으면 좋겠다' 하시더라고요. 정식으로 연기공부 안 한 친구치고는 센스가 있다고. 좋은 연기자들 나오는 걸 많이 봐라 하시면서 메릴 스트립의 '철의 여인'을 추천해주시기도 했어요."
이순재의 조언에 일주일 촬영 중 단 하루 쉬는 날을 빼 기어이 '철의 여인'을 볼 정도로 성실하고, 무슨 역할을 맡든 스폰지처럼 흡수하여 표현하는 이승기. 그는 오랫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는 비결을 벌써 눈치 챈 듯하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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