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강만수 산업은행 총재의 발언이 지난주 경제계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현재 악화일로로 치닫는 유럽 위기의 성격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자본주의의 최대 위기로 진단했다. 우선 양적으로는 스페인까지 금융 위기가 전면화될 경우 그 회복은 향후 어쩌면 10년이 넘도록 찾아오지 않을만큼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경기 침체가 세계 경제를 덮치게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다. 이번 위기의 진정한 특징은 이것이 자본주의의 근본적 위기로서 그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게 될 제도적 구조의 위기라는 성격 규정도 함께 덧붙였다.
언론에서는 일국의 경제 정책을 지도할 위치의 인물들이 이러한 큰 이야기를 덜컥 꺼내놓아 가뜩이나 불안으로 점철된 국내의 금융 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만든 경솔한 행동이 아니었느냐는 질타가 많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 유럽 위기가 어떤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으며 이것이 유럽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를 어떤 상황으로 몰고가고 있는가를 조금이라도 지켜보았다면 이것이 결코 '경솔한' 발언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우선 지금 유럽 위기는 국민 국가 차원에서 위기를 풀며 이를 IMF 나 몇 가지 초국적 기구의 도움으로 해결한다는 전통적인 해결 방식도, 그리고 신자유주의 경제 이론의 유토피아적 화폐 이론에 근거한 유로존의 구상도 모두 끝장을 내버렸다. 이제 프랑스는 유로본드 구상을, 독일은 재정 동맹 구상을 내놓는 등 유럽 전체 차원에서의 해법으로 넘어가고 있다. 물론 이것이 현존하는 모순과 위기의 자동적인 해결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단지 새로운 수준에서 새로운 양상으로 문제를 전개시키게 되어 있다는 것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은 이제 '스테이지 투'로 넘어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스테이지 쓰리'는 아마 전 세계 경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산업 경기 회복이 다시 사라지고 있는 데다가 지난 몇 년간 위기의 세계 경제에서 꾸준한 밑불이자 엔진이 되어 줬던 중국 경제는 각종 산업 관련 지표가 일제히 동반 추락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가 말한 '퍼펙트 스톰'이 그대로 오고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은 너무나 당연하다. 문제는 이번 위기의 질적 차원으로, 소위 '복합 위기'라는 성격에도 있다. 김석동 위원장이 지적하였듯, 스페인은 사실상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한 은행 금융 위기이며, 그리스는 익히 알려져 있듯이 재정 위기이며, 미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들은 사실상 산업 침체의 위기로서 모두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여러 양상의 위기가 현재는 서로가 서로의 원인과 결과로 엮여서 단일한 하나의 '복합 위기'로서 전 세계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는가. 무엇보다도 지난 30년간 산업과 경제에 있어서 절대적인 최상의 조직 및 운영 기관으로서 자본 및 금융 시장을 대형화 지구화하고 최대한의 자유를 허락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경제학자들이 그 동안 무책임하게 강변했던 것처럼 이 지구화 탈규제화된 자본 및 금융 시장은 모든 자산의 적정 가격을 찾아주고 최상의 효율적 자원 배분을 이루기는커녕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자산 거품과 정부 금융 기관 가정 경제 할 것 없이 모조리 최악의 빚더미에 올려놓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러한 금융 및 자본 시장의 환상적 작동 속에서 전 지구의 무수한 행위자들의 다종다기한 경제 활동은 지구 위의 모든 곳을 들쑤시고 다닌 자본의 흐름 속에서 긴밀한 하나의 금융 및 신용망 속에 연결되었다.
김석동 강만수 두 사람이 모두 현존하는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질적 전환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맥락을 따져볼 때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비판의 논점은 다른 곳에 있다. 과연 그렇게 이야기한 두 사람과 우리 경제 관료들은 그러한 패러다임 전환에 걸맞는 정책과 제도의 준비를 하고 있는가.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김석동 위원장은 우리은행의 외자 매각 가능성을, 강만수 총재는 '메가뱅크 대망론'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과연 우리는 이러한 100년만의 양적 질적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만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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