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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탄생 250주년 기념… 강진 기행·세미나 등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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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탄생 250주년 기념… 강진 기행·세미나 등 행사

입력
2012.06.1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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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실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이 남긴 유배살이의 흔적엔 흐트러짐이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211년전인 1801년 겨울, 다산은 전남 강진으로 유배 와서 처음 머무른 주막에 '사의재'라는 이름을 붙였다. '생각, 용모, 말, 행동 등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란 뜻이다.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사옥에 연루돼 유배 길에 오르면서 느낀 깊은 절망감을 뒤로 하고 교육과 학문 연구에 정진하기로 마음을 다잡은 곳이기도 하다.

다산 탄생 250주년을 맞아 학계를 중심으로 그의 업적을 되돌아보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다산연구소와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은 8~9일 전ㆍ현직 언론인들을 대상으로 '언론인과 함께 하는 실학기행 2012'를 열었다. 다산과 그의 형 정약전(1758~1816)의 발자취를 따라 강진과 흑산도를 답사했다. 김민환(고려대 명예교수) 다산연구소 대표는 "다산의 삶과 개혁적인 업적, 실사구시 철학이 21세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는 자리"라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다산은 강진에서 18년 간 유배살이를 했지만 학문엔 오히려 몰두하는 계기가 됐다. 사의재, 보은산방, 이학래의 자택, 백련사, 다산초당까지 강진 곳곳이 '다산 유적지'다. 그의 주옥 같은 시가 적힌 팻말도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다산과의 일화 하나, 인연 하나 없는 마을이 드물 정도다. 그가 남긴 500여권의 저서 중에 <목민심서> , <흠흠신서> , <경세유표> 같은 유명 저서도 모두 이곳에서의 연구를 바탕으로 완성됐다. 김태희 다산연구소 실장은 "강진은 다산이 나중에 '내가 강진에 귀양 오기를 참 잘했다'라고 말할 만큼 시대의 아픔을 학문적 업적으로 승화시킨 곳이라 다산 연구자들에게는 특히 의미 있는 장소"라고 했다.

신유사옥 때문에 유배살이를 한 건 다산만이 아니었다. 정약전도 흑산도에서 15년을 보냈다. 흑산도엔 정약전이 후학을 양성하고 <자산어보> 와 같은 저술 활동에 힘쓰던 사촌서당이 남아 있다. 다산은 다산초당에 올라 흑산도 쪽을 바라보며 형을 그리워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7일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관훈클럽 주최로 '다산, 그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열렸다.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가 '다산이 언론에 주는 가르침'을, 전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한국경제사 교수가 '21세기 즐거운 삶과 다산의 성기호설'을, 김정탁 성균관대 교수가 '다산과 소통'을 주제로 기조 발표하며 다산의 학문적 성과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조명했다.

강진·흑산도=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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