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에게 눈을 돌리면 사람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발견할 수 있다. 길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곳, 우린 모두 길 위에 서 있다.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길에서 만나 서로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한다는 것, 그것만큼 특별한 일상이 또 어디 있겠는가.
1월 말 네팔. 안나푸르나 고레빠냐에서 푼힐로 올라가는 길에 한 벗을 만났다. 로드리고 산체스. 그는 푸른 눈에 하얀 머리, 따뜻한 가슴을 지닌 브라질 청년이었다.
얼음이 뒤덮인 히말라야의 밤은 몹시 추웠다. 산장의 난롯가에는 여행객들이 둘러앉아 저마다 몸을 녹이고 있었다. 그때는 멀리 고국에서의 설날이었다. 우리 일행은 떡국 대신 빵을 나눠먹으며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새해를 준비했다. 설레이며 새해를 기리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는 외국인 여행객들 틈에서 유독 신기한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던 이가 로드리고다. 그는 태국에서는 통역을, 호주에서는 바텐더를 하며 번 돈으로 혼자 여행중이었는데, 네팔을 거쳐 다시 태국으로 가려던 참이라고 했다. 한국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진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 보았다. 나는 싸구려 위스키를 그에게 건냈다. 술을 한 모금 마신 로드리고는 윙크로 내게 고마움을 표했다.
다음 날 새벽. 우리 일행은 일출을 보기 위해 잠이 덜 깬 채 산을 올랐다. 우리 일행 뒤쪽에는 로드리고가 미끄러운 비탈에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며 천천히 따라 오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들은 사고가 났을 경우의 책임 때문에 그룹에 속한 여행자가 아니면 도와주지 않는다. 일행 중에 아픈 사람이 있었지만 모두가 일출을 놓칠세라 앞질러 가는데 반해 로드리고는 진심어린 걱정에 아픈 사람과 끝까지 함께 행동했다.
하산 길에서도 무릎이 안 좋은 사람이 있었는데 로드리고는 그의 관절에 약을 발라주고 걷는 속도를 그 사람에게 맞춰서 맨 뒤에서 내려왔다. 이미 그는 자신의 짐 위에 허리가 약한 또 다른 여행자의 배낭까지 대신 짊어진 상태였다. 한 명 한 명의 컨디션을 계속 되물으며 응급 처치에 대한 조언을 주면서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포카라까지 함께 가게 됐다.
다음날 카트만두로 이동하기로 되어있었으나 현지 폭동으로 인해 모든 여행객들의 발이 포카라에 묶이게 됐다. 로드리고는 우리들이 머무는 숙소로 찾아와 바로 옆에 자신의 방을 잡고 우리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를 원했다. 그의 다음 여정은 태국으로 돌아가 집과 학교를 짓는 프로젝트를 하는 친구의 일을 돕는 것이라고 했다. 언제 한번 꼭 좋은 위스키를 들고 우리를 다시 만나러 한국에 오겠다고 약속했다.
푸르른 5월. 로드리고가 서울을 찾아왔다. 그의 말처럼 좋은 위스키를 들고. 나와 네팔여행의 동료들은 2주 동안 브라질의 청년 로드리고와 서울을 걸었다. 그는 짧은 시간 안에도 한국 문화를 느끼고 싶어했고 우리들이 하는 언어를 알아듣고 싶어하며, 한국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과 가족애를 존중하며 소중히 여겼다.
나는 로드리고 덕에 그가 보는 서울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곳곳에 깃들여 있고, 일상속에 담긴 독특한 서울의 정서는 서양에 잘 알려진 그 어떤 아시아 문화들보다 아름답고 독특하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의 문화를 자신의 일부처럼 자랑스럽게 여겼다. 헤어지기 하루 전, 로드리고는 푸른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우리를 얼싸 안고 한국어를 배워서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우리가 그날 네팔의 산장에서 고국의 설날을 기리지 않았더라면, 혹은 이 청년이 처음부터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인연이었다. 우리에게 명절때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문화가 없었다면, 혹은 이 청년이 사람과 문화를 존중하는 따뜻한 가슴을 지니지 않았더라면 없었던 일일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눈을 돌리니 인연이 생겼다. 인연은 무료하고 건조한 삶을 무궁무진 흥미롭게 만든다.
참고로 나는 로드리고를 부를 때 이렇게 불러왔다. 고(go)! 고(go)! 로드리고!
박근형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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