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계/이강영 지음/휴먼사이언스 발행ㆍ368쪽ㆍ1만8000원
기원전 600년경 자연철학의 아버지라 일컫는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여겼다. 또 다른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주장했다. 그런 생각이 정교하게 다듬어져 나온 게 4원소설이다. 이 이론은 물질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 불, 공기, 흙으로 이뤄졌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가 물질을 구성한다고 생각하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원전 400년경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와 레우키포스는 물질을 구성하는 건 최소 입자인 원자라 했으나 이 이론이 주목 받은 건 1803년, 영국 과학자 돌턴이 원자설을 발표하면서부터다. 돌턴은 모든 물질은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원자로 돼 있고, 같은 종류의 원자는 크기, 질량 등이 같다고 말했다. 이후 엑스선과 전자빔을 이용한 실험에서 원자는 모습을 드러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깥의 존재'는 약 2,200년 지나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이 일화는 인류의 사고가 보는 것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말해준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속담이나 영화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투명인간 역시 이런 사고가 빗어낸 산물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 는 바로 이 지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걸까'란 다소 철학적인 의문으로 인간의 시각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세계를 탐구한다. 저자는 "본다는 것은 자연과학의 시작이고 끝일 뿐 아니라 자연과학 그 자체"라며 중성미자, 블랙홀, 암흑물질 등 인간이 마주친 보이지 않는 물질을 통해 본다는 개념이 어떻게 확장돼 왔는지를 풀어냈다. 보이지>
인간의 눈은 가시광선만 인식한다. 지구 대기를 거쳐 지표에 도달한 빛은 대부분 가시광선이어서 식물은 이 빛으로 광합성 하고, 식물을 먹는 동물은 이 파장의 빛을 보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가시광선은 자외선, 엑스선 등 다른 빛보다 물체를 식별하는 능력(분해능)이 떨어진다.
그런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한 것이 현미경과 망원경, 가속기다. 가령 칠레에 있는 극대망원경(VLT)은 달에 자동차 한 대를 세워놨을 때 오른쪽과 왼쪽 헤드라이트를 구별할 수 있다. 이 망원경은 8.2m 구경의 주 망원경 4개와 1.8m 구경의 보조망원경 4개로 이뤄졌다. 지상 약 569km 상공에서 97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씩 돌며 우주의 심연을 관찰하는 허블망원경도 '인류의 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물리학 하면 지루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갖지만, 이 책은 빛까지 흡수하는 완전히 까만 천체 블랙홀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는 볼 수 있는데 양성자를 아무리 쪼개도 왜 이 입자를 이루는 쿼크는 관찰할 수 없는 걸까 같은 흥미로운 질문이 '본다'는 개념을 넓혀온 물리학 역사와 버무려져 흥미를 돋운다.
이 책은 이강영 건국대 물리학부 교수의 두 번째 저서다. 이 교수는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가 운영하는 대형강입자충돌기(LHC)와 입자물리학을 소개한 처녀작 으로 지난해 제52회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 저술상을 받았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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