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아름다운 너에게/쉰네 순 뢰에스 지음·손화수 옮김·시공사 발행·240쪽·8,500원
제목만 보면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사춘기 소녀 이야기인가 싶다. 하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두 소녀의 대화는 삶과 죽음을 넘나든다. 그들이 코앞에 마주한 현실이기에 철학적이기보다 절박하고도 애처롭다.
<충분히 아름다운 너에게> 는 열일곱 살 두 소녀가 서로에게 꾹꾹 눌러 담았던 상처를 들춰 보이며 치유하는 과정이 담긴 편지형식의 소설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살고 싶은 미혼모 요한네와 '사는 건 전쟁'이라며 생을 등지려는 제니가 그들. 극과 극에 선 그들은 한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7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가족이자 친구가 된다. 충분히>
제니는 두 차례나 성폭행을 당했지만 함께 사는 엄마는 그 사실을 알지도, 보듬어주지도 못한다. 상처로 버거운 제니는 홀로 끙끙 앓는다. "나도 아파. 하지만 난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프지. 몸과 마음은 엄연히 다르지만, 아픈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다른 방법으로…. 그래, 아픈 건 매한가지야. 그렇다고 네가 나를 측은하게 여겨주길 바라는 건 아니야. 만약 너마저 나를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삶의 의욕마저도 잃어버릴 것 같아. 넌 날 이해할 수 있겠지?"(제니의 편지ㆍ132쪽)
제 몸 가누기도 어려운 엄마에게 놀아달라고 조르는 두 살배기 딸과 자상한 아버지와 함께 사는 요한네. 강인하게 생을 끌어안기도,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하던 어린 소녀는 때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울부짖는다. "난 이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돼. 의사들은 나를 포기했단다. 벽시계가 똑딱똑딱 소리를 내고 있어. 그걸 부수어 버리고 싶어. 아주 잘게 부수어 버리고 싶단다."(요한네의 편지ㆍ104쪽)
요한네의 삶과 죽음은 위대한 유산을 남긴 듯했다. 제니는 살아갈 이유를 발견해가고 있었으니.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저자 쉰네 순 뢰에스는 성장한 요한네 딸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살고자 노력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이 짧은 문장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생후 7개월에 노르웨이로 입양된 저자가 이국 땅에서 성장통을 겪으며 깊은 성찰 끝에 얻어낸 답일지도 모르겠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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