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독일 노르트라인_베스트팔렌주 의회 선거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이 가장 저조한 득표율(26.3%)을 기록하며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날 선거가 드리운 충격파는 집권당의 패배뿐만이 아니었다. 독일 해적당이 7.8%를 득표, 주 의회 20석을 차지하며 제도권 정치에 뛰어든 것이다. 해적당은 지난해 9월 베를린 시의회 선거에서도 8.9%를 얻으며 약진했다.
해적당이 유럽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 투명성과 시민사회 참여 등 신선한 정치를 내세우는 신생 해적당이 기성정당들을 위협하면서 급성장하고 있다.
해적당은 2006년 1월 스웨덴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인터넷의 불법복제 콘텐츠를 뜻하는 '해적(Pirate)'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들은 주로 위조 및 불법복제 방지협정 반대 캠페인과 저작권제도 개혁 및 사생활 보호 등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 스웨덴의 해적당은 삽시간에 인터넷상에 퍼져 독일에서 같은해 9월 해적당이 만들어졌고, 뒤이어 오스트리아 덴마크 폴란드 스페인 프랑스 등 전 유럽으로 해적당 창당이 들불처럼 확산됐다. 2010년 4월 벨기에에서는 전세계 해적당을 규합하는 '해적당 인터내셔널(PPI)'이 공식 설립됐다. PPI에는 현재 61개 국가의 해적당과 옵서버 자격의 6개국의 해적당이 가입해 있다. 한국도 해적당이 생기면서 PPI 회원국으로 등록돼 있다.
이들의 활동은 자연스레 정치참여로 이어졌다. 기존 정당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인터넷상에서 시민참여를 이끌어내는 공론의 장이 열린다. 기성정당의 일방적인 정치 시스템에 염증을 내던 유권자들은 해적당의 출현에 열광했다.
가시적인 효과도 나왔다. 스웨덴 해적당은 2009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7.13%의 지지율로 유럽의회 의석 두 자리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근 독일 해적당도 적지 않은 의석을 차지해 큰 성과를 냈다. 이달 치러지는 프랑스 총선에서도 101명의 해적당 후보가 출마한다.
하지만 해적당이 정치 주류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없고, 시민들의 의견을 포괄하기에도 영향력이 부족하다. 독일 일간 타게스슈피겔은 "해적당 내부에서조차 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며 "해적당이 주요 정당으로 주목받기에는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경제위기 등으로 야기된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의 표현으로 해적당의 출현을 해석하기도 한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