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르(러시아 황제)가 돌아왔다. 천자가 바뀌면 신하도 바뀌는 법(一朝天子一朝臣).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말 새 내각을 발표하고 3기 체제를 가동했다. 예상대로 측근들을 요직에 기용, 푸틴 사단의 철옹성을 굳건히 했다. 하지만 철옹성 내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내부 권력간 조용한 암투가 예고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푸틴의 사람들
푸틴 사단의 핵심멤버는 정보기관 군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출신을 일컫는 '실로비키(Siloviki)'들이다. 국가보안위원회(KGB), 연방보안국(FSBㆍKGB의 후신), 연방마약유통통제국(FSKN) 등의 전직 장교가 대부분이다. 1990년대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시절 권부에 진입해 푸틴 집권기에 권력 핵심으로 떠올랐다. 푸틴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으로 KGB를 거쳐 부총리에까지 올랐던 이고리 세친, KGB 출신으로 국방장관, 부총리, 대통령 행정실장에 오른 세르게이 이바노프가 주요인물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도 푸틴 사단의 주축이다. 푸틴의 최측근인 이고리 슈발로프와 '푸틴 정치의 설계자'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는 이번 내각에서 부총리에 유임됐다. 푸틴 1기부터 11년간 러시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맡았던 알렉세이 쿠드린은 내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푸틴과의 친분이 막강하다. 메드베데프의 최측근 아르카디 드보르코비치도 부총리로 임명돼 푸틴 체제를 완성했다.
90년대 국유재산을 헐값에 불하받는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쌓은 신흥 재벌을 뜻하는 올리가르히(신흥 과두재벌)도 빼놓을 수 없다. 석유판매회사 군보르의 최고경영자(CEO) 겐나디 팀첸코(55), 러시아 최대 국영회사인 가즈프롬에 가스관을 공급하는 '스트로이가스몬타슈'의 아르카디 로텐베르크 회장, '푸틴의 자금줄'인 방크로시야의 최대주주 유리 코발추크가 그들이다.
'에너지 차르' 암투 치열
러시아는 가스와 석유로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에너지 분야에 이권이 집중돼 있다. 세계 최대 가스회사인 국영 가즈프롬은 러시아 경제의 버팀목이다. 2000년 푸틴 1기 정권 출범 후 러시아가 연 7%대의 고도 성장을 이룬 것도 가즈프롬의 영향이 컸다. 이밖에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는 연 수익 120억달러, 기업의 시장가치는 최소 660억달러로 평가되는 세계 최대의 석유회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에너지를 둘러싼 내부 권력관계도 복잡 미묘하다. 이번 내각에 포함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던 세친 전 부총리가 내각 명단 발표 바로 다음날 로스네프트의 CEO로 임명된 데 대해 전문가들은 메드베데프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을 견제하기 위한 푸틴의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친유럽파로 민영화를 강조해온 메드베데프와 에너지 기업의 민영화를 반대하는 세친의 기싸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러시아 정계의 '회색 추기경(숨은 실력자)'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세친은 '메드베데프의 사람'으로 불리는 아르카디 드보르코비치 부총리와도 공공분야 민영화를 놓고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올리가르히도 이권 암투에 합세했다. 세친의 로스네프트와 최근 합작사업을 추진 중인 천연가스 생산업체 이테라는 또 다른 천연가스 생산업체인 노바텍이 가즈프롬에 독점 공급하는 가스 판매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에 따라 노바텍의 대주주이기도 한 팀첸코와 세친의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가즈프롬에 독점적으로 파이프를 공급하는 스트로이가스몬타슈의 로텐베르크 회장도 지난해 러시아가 제정한 반독점법 규제 시행으로 사업이 위태로워졌다. 블라디미르 밀로프 전 연료에너지부 차관은 "세친이 에너지 권력을 장악하면서 에너지 분야에서의 권력 재분배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사단의 분열
전문가들은 푸틴이 균형적인 인사배치로 에너지 사업을 둘러싼 암투를 일단락지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푸틴이 내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푸틴을 중심으로 구축됐던 동맹이 점점 분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메드베데프와 충돌한 뒤 경질된 쿠드린 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시민행동위원회'를 창설, 진보진영의 인사로 급부상하며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모스크바 싱크탱크인 카네기센터의 마샤 리프맨 연구원은 "권력 암투가 과열된 것처럼 보이지만, 권력이 바뀌면 내부 권력 암투는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과거 유일한 결정권자였던 푸틴의 사람들이 다른 동맹을 모색한다는 것은 푸틴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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