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일본 도쿄 부도칸(武道館) 앞이 여성들로 북적거렸다. 한국 남성그룹 2PM의 콘서트를 보러 20대부터 40대 정도까지의 팬들이다. 2PM을 좋아하는 이유를 물으니 한결 같이 "남성적이라서"라고 대답했다. '야수계 아이돌'이라 불리는 2PM 같은 일본 그룹이 있냐는 질문에 이들은 모두 "없다"고 말했다.
이틀 후 도쿄 국립요요기경기장에서는 그룹 샤이니의 콘서트가 있었다. 현지에서 데뷔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1만2,000여 객석의 티켓은 남김 없이 팔려나갔다. 공연장 앞에서 만난 기타무라 사에코(23)씨는 "샤이니는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좋지만 보호해 주고픈 느낌을 자극해서 더 좋다"며 "능숙하지 않은 일본어로 열심히 말하는 모습이 귀엽다"고 했다.
두 콘서트를 찾은 팬들의 95% 이상이 여성이다. 연령대는 2PM의 경우 20~40대가 주를 이뤘고, 샤이니는 10~30대가 가장 많았다. 두 그룹은 모두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한지 만 2년이 채 되지 않은 '신인'이다. 서로 상반된 성격의 두 그룹이 단기간에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도쿄에서 15년째 거주하며 쓰쿠바(筑波)대학원 정치학 박사과정인 김현옥(39)씨는 "10년 전엔 40대 이상이 한류 소비의 중심이었지만 최근엔 10, 20대 여성들도 K팝 그룹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젊은 여성들 사이의 '육식녀' 현상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고 했다. '육식녀'는 일본에서 몇 년 전부터 쓰이는 유행어로 연애에 적극적이고 남성적 성향이 두드러진 여성을 가리킨다. 반대가 매사 소극적이고 여성적인 취향이 두드러진 남성을 뜻하는 '초식남'이다. 김씨는 "여성의 경제력 성장과 남성의 경제력 위축이 '육식녀 현상'을 일으켰고 그 결과 장근석, 2PM, 샤이니 같은 역동적인 이미지의 한류 스타들이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육식녀'가 증가하면서 K팝 가수의 인기도 높아졌다는 조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일본 여성의 경제력 상승과 K팝의 인기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일본 정부가 최근 펴낸 '어린이ㆍ육아 백서'에서는 50세까지 평생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여성이 열명 중 한 명꼴로 역대 최고치다. 총무성의 '2011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0년 63.2%로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독신이나 자녀 없는 핵가족 세대의 경제력 있는 여성들의 대중문화 향수에 대한 욕구가 일본내 K팝 아이돌 공연의 흥행 성공을 뒷받침하는 한 가지 요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이 대변하듯 오랫동안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 경제 현실과는 반대로 최근 일본내 K팝의 성장은 특히 괄목할만하다. 지난해 일본 음악차트 오리콘이 집계한 가수별 매출 순위에 따르면 10위 내에 카라(4위, 49억엔), 소녀시대(5위, 40억엔), 동방신기(9위, 26억엔) 등 세 팀이 올랐다. 동방신기,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등이 소속된 SM엔터테인먼트가 지난 1분기 일본에서 거둔 매출은 175억 4,2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45.7%의 증가율을 보였다.
일본 시장은 콘서트와 음반ㆍ음원 매출의 단가가 국내보다 높고 저작권 보호가 잘 돼 있으며 팬들의 충성도가 높아 국내보다 훨씬 수익률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 주요 가요 기획사들이 올해 일본 공략에 중점을 두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는 이유다. JYP엔터테인먼트 소속의 2PM은 일본 지상파ㆍ케이블 TV에 출연하며 현지화 전략을 펼치고 있고, 미국 활동에 전념하던 원더걸스도 국내 활동 재개와 함께 일본 시장 공략에 나선다.
그러나 일본 내 K팝의 인기가 큰 흐름이 아닌 일부 콘텐츠의 힘이라는 분석도 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정욱 대표는 "K팝이라는 큰 카테고리가 일본 내에서 커지고 있다기보다는 잘 만들어진 개별 콘텐츠들의 현지화 맞춤 활동이 결실을 보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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