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예상대로 8일 기준금리를 12개월째 동결(연 3.25%)했다. 전날 중국의 전격적인 금리 인하 결정이 혹시나 하는 기대를 부추겼지만 선제적 대응을 하기엔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물가불안 요인이 여전함에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탓에 금리를 내리기도, 올리기도 어려운 통화정책의 딜레마가 만장일치 동결을 이끌어낸 것이다.
때문에 이날 시장의 관심은 금리 동결 결정이 아니라 김중수 한은 총재의 코멘트에 모아졌다. 김 총재는 "회의에서 금리 인상이나 인하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고 거듭 강조한 뒤 "금리 정상화 기조를 변화시킬만한 특별한 사유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물가는 복지정책 등의 효과를 빼면 3.2% 수준이고, 기대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3.7% 정도로 낮은 수준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달과 거의 비슷한 인식이다.
다만, 그는 "금리 정상화는 변수가 많다. 한편에선 성장의 하방 위험이 커지는 등 세계적인 여러 변수에서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고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좀더 심층적인 분석이 이뤄지면 여러 가능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적어도 금리 정상화(금리 인상) 의지는 한풀 꺾인 셈이고, 넓게 보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걸로 읽힐 수도 있다.
김 총재의 발언을 두고는 시장의 해석이 엇갈렸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5월에 비해 낙관적인 경기전망이 후퇴한 걸 봐선 금리 인하 시점이 다음달쯤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반면 김상훈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대선을 앞두고 체감물가가 여전히 높은데다 유럽 등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선제적인 금리 인하를 할 여건이나 능력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브라질 호주 중국 등이 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유럽과 미국이 성장 쪽으로 선회하면서 한은의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중국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려서 우리도 인하 기대가 있지만, 경기 하강세가 뚜렷하게 가시화하는 상황이 아니라 당장은 동결 외의 선택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석 삼성증권 연구원은 "경기가 둔화하는 걸 확인한 후에나 금리를 내릴 텐데 2분기 국내총생산(GDP) 지표가 나오는 3분기 중반쯤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날 국내 금융시장에서 중국 금리 인하의 약발은 잠깐에 그쳤다. 코스피지수는 12.31포인트(0.67%) 하락한 1,835.64, 코스닥지수는 4.19포인트(0.9%) 내린 461.99로 마감했다. 원ㆍ달러 환율은 3.9원 오른 1,175.4원을 기록했다. 아시아 주요 증시도 모두 하락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추가 경기부양책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게 투자자들을 실망시킨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고채시장은 향후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로 3년 만기와 5년 만기가 각각 0.05%포인트, 0.07%포인트 내린 3.25%와 3.37%를 기록하는 등 강세를 보였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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