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에는 '같은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대립과 분열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편을 가르고, 싸움에 이기려다 보니 바람은 더욱 거칠어진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어느 편인가를 떠나, 우리 사회를 양쪽으로 갈라버리는 극단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은 "대화하고 협상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정치적 대립에 지친 시민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소모적 이념논쟁 파묻혀 국가 이익은 뒷전
●강민지(36ㆍ세이브더칠드런 마케팅전략팀장ㆍ전 새누리당 의원 보좌관)
"국회에서 보좌관으로 일할 때 중요한 국가 정책이 정치 이념으로 소모적인 갈등을 반복하는 예를 지켜봤다. 대표적인 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이다. 국민의 건강이 달린 사안을 처리하는 데 절차적 하자가 있었고 정부가 국민 동의를 받지 않고 밀어붙여 분노를 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치쟁점화 되고 본질에서 벗어나더니 해결책 논의는 멀어지기만 하는 걸 보면서 굉장히 답답했다. 특히 국회에 들어오기 전 기업을 상대로 경영 컨설턴트를 하던 내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언론도 국가적 이익을 따지기보다 이념논쟁을 부추기기에 바빴다.
이념 대립의 밑바탕에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 다시 말해 '생계이슈'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급속한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가 온 우리나라에서 정치 이념과 경제 이념, 사회적인 이념이 뒤섞이는 혼란을 겪는 건 필연이다. 오픈 마인드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극단의 목소리 커지며 사회전반 혼란속으로
●조정기(46·성공회대 교목)
"보수와 진보 사이의 대립도 있지만, 각 진영 안에서도 통합진보당 사태와 같은 갈등이나 수구와 보수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편가르기 등이 있다. 하지만 국민 다수는 그런 극단이 아닌 중간 진영의 색깔을 원한다고 본다. 좌ㆍ우 양 극단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들이 자신들의 의견이 아니면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사회 전반이 혼란에 빠지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이 이념의 극단화를 이용한 측면이 있다. 자기에게 유리한 표를 얻기 위해 과도하게 편가르기를 하거나, 상대를 폄훼하기도 했다. 종교계에도 영향을 미쳐 과도한 정치적 입장을 종교적으로 포장해 확대된 면도 있다.
정부가 책임 있는 정책을 만드는 데 국민이 참여해야 한다. 선거 때 통합의 리더십을 가진 바른 지도자를 택해야 한다."
논쟁의 場도 없이 진영논리 선택 강요당해
●정은선(28ㆍ회사원)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때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언론이나 트위터에서 특정한 의견이 강화되면서 더욱 대립이 심해 보인 것 같다. 김용민의 발언도 트위터에 무비판적으로 게재되고, 포털 사이트에 자극적 제목을 달고 퍼져나갔다. 경기동부연합의 글도 공신력 없는 인터넷 매체에 실린 게 발단이 됐다.
정치권이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여냐 야냐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것이 문제다. 진보나 보수나 비슷하다. 논쟁거리가 생기면 대화와 설득을 통해 접점을 찾아야 하지만 극우 극좌는 설득을 하기도, 설득을 당하기도 어려워 논쟁이나 협상의 장조차 마련되지 않는다. 나 같은 중도 성향의 사람들에게 특정 진영의 논리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느낌이다.
중도는 기회주의자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중도는 협상이 되는 사람들이다. 어느 편에 서지 않고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런 세력을 무시해선 안 된다."
'쉬쉬하다 마녀사냥' 진보언론도 실망스러워
●최유정(28ㆍ프리랜서 작가)
"본인들의 이해득실만 따져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태도는 극좌든 극우든 비슷한 모습이다. 목표를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가 반복 재생산되고 있는 듯하다. 극단적인 이념 대립은 한국의 분단 현실로 인한 것이겠지만, 일부 언론의 책임도 분명 있다.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 때 확인 취재 없이 당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게시물을 통해서 주사파로 모는 등의 보도 행태가 아쉽다. 진보 언론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닌 통진당 내 당권파의 문제에 대해 지금에 와서 마녀사냥 식으로 보도하는 모습은 실망스럽다.
한국일보의 장점이라면 갇힌 프레임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슈마다 틀에 박힌 가치판단을 하지 말고 여러 가지 가능성과 가치를 생각하면서 취재와 보도를 해 줬으면 좋겠다. 이것이야말로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언론사가 걸어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극소수가 다수 대변하는 양 착각… 정치가 문제
●유윤재(61ㆍ유윤재치과 원장)
"한국일보 구독자다. 성실하고 바쁜 사람들 중엔 치우치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도 목소리 큰 극소수의 극단 세력이 마치 다수인 양 비춰지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취직 안 되고 하니 불만이 커지고 극騈?좌파 운동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반대로 6ㆍ25 세대는 너무 어렵고 고생한 기억이 있어 다시는 그런 일 일어나면 안 되니까 보수적 생각을 갖게 된다.
문제는 일부가 극단적 방식을 쓴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극한다고 같은 방식을 쓰면 되나. 극단적 세력 내에는 반드시 이득을 챙기는 사람이 있다. 다수는 이들의 선동에 휘말려 동원될 뿐이다.
결국 정치가 가장 문제다. 부정부패를 없애고 세금을 형평성 있게 부과하기만 해도 사회가 한층 나아질 것이다."
종북논란 진보 한심… 표에 목맨 보수도 꼴불견
●박영봉(55ㆍ어린이집 원장)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면서 극단적 진보파에 대한 혐오가 커졌다. 당헌ㆍ당규에 뭘 넣고 빼느니 친북이니 종북이니 하는 논란을 벌이는 게 한심하다. 진보진영이 북한 인권에 대한 얘기하는 것은 피하면서 북한에 대한 환상만 이야기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오래 야당이다 보니 권력에 무조건 반대하던 습성이 그렇게 굳어진 건 아닌가 생각된다.
보수파도 자기 실속만 챙기는 모습 볼 때는 꼴불견이다. 이번 총선 때 무상보육을 놓고 벌인 논의가 그 예이다. 아무리 유권자들 표를 얻어야 한다 해도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말 지원해줘야 하는 사람뿐 아닌 잘 사는 사람까지 지원해주자는 건 문제다. 그런데도 이성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정치인이다. 항상 돈 문제가 얽혀 있고 자기 이익을 챙기는 국회의원 대신 이제 청렴한 사람들을 좀 보고 싶다."
귀 닫고 억지 쓰는 태도, 사회발전에 도움안돼
●권민정(35ㆍ프리랜서 편집자)
"극단적인 좌우 간 갈등 양상이 소모적이다. 애초에 서로의 의견을 조율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비방을 주고받거나, 조율이 필요한데도 상대 입장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립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논리를 벗어난 감정적 대응, 설득 아닌 억지, 귀는 닫고 입만 여는 태도 등이 소모적이다. 이런 태도는 건전한 경쟁, 다원주의, 합리성 등에 도움이 될 리 없다.
상대 신념이나 의견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해도 내가 이런 의견을 가지게 된 것처럼 상대도 저런 의견을 가질 수 있다는 권리를 인정하고, 상대 의견을 듣고 검토하며 설득해 나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지긋지긋한 갈등과 대립에 쏟고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거둬들여 내부 역량 발전과 성장을 위해 사용해야겠다는 절박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지은기자 luna@hk.co.krr
이동현기자 nan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