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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한 사회 대한민국/ 고용불안 스트레스도 큰 데… 여전히 법따로 현실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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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한 사회 대한민국/ 고용불안 스트레스도 큰 데… 여전히 법따로 현실따로

입력
2012.06.0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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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한국인의 삶이 지치고 화나는 것은 경쟁이 치열해 살아남기 힘들어서만이 아니다. 경쟁의 룰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인식으로 인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면에선 선진국 못지 않지만 어떤 제도는 여전히 전근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의 문제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 최소한 법질서의 적용과 기회만은 공정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 꼭 갖춰야 할 제도는 무엇일까. 한국일보가 각계 전문가들에게 물어 5가지를 꼽았다.

① 비정규직 임금차별 철폐

선진국들은 언제 일을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비정규직들에게 오히려 임금을 더 많이 준다. 고용불안에 대한 대가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임금차별, 고용불안을 모두 비정규직에게 떠 안기고 있다. 기업은 고용 융통성을 높이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영방법으로 보지만, 사회 전반에 심각한 갈등과 불안을 야기한다는 점이 큰 문제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정규직이 하는 일과 비정규직이 하는 일을 나누고 임금을 차별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선진국들은 임금차별 비교대상을 사업장이 아닌, 해당 산업수준으로 확대해서 본다"며 "이런 제도를 도입해서 비정규직 임금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설명했다.

② 금융사 채용 적격성 심사- 도덕성·윤리성 높여 금융비리 발붙이지 못하게

300년 전통의 영국 베어링은행을 파산시킨 딜러 닉 닐슨. 영국 본사는 그의 입사심사 때 그가 우리 돈으로 20만원 정도를 연체한 적이 있으면서도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적발했다. 그는 영국 금융계의 까다로운 적격성 심사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똑똑한 그를 내치기가 아까웠던 베어링은행은 그를 아시아싱가포르 지점에 채용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파생상품의 위험을 무시하고 이윤만 높이려다 결국 회사를 파산으로 이끌었다.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 일화를 들려주며 "금융이라는 것은 남의 돈을 관리하고 사회적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도덕성과 윤리성이 요구된다"며 "입사 때부터 적격성 심사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내에는 2010년에야 금융회사 대주주에게만 적격성 심사가 도입됐다. 이 때문에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처럼 신용불량자조차 금융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다. 저축은행 부실과 금융감독기관의 부정부패 등 끊이지 않는 금융비리 차단을 위해서도 적격성 심사를 광범위하게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③ 고소득자 세금공제 축소- 씀씀이 클수록 더 공제… 저소득층보다 혜택

세금은 공평하게 부과하는 것 못지 않게, 공평하게 깎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조세에서 '공평'이란 소득에 따른 세율 누진을 강화해 사회적 분배에 기여하는 것을 포함한다. 최근 몇 년간 부유층의 최고세율 구간 인상에 대한 논의는 활발했지만 부유층에 대한 과도한 소득공제는 상대적으로 논의가 부족했다.

우리나라는 교육비 등 각종 소득공제가 결국 씀씀이 적은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에게 더 큰 이익을 안겨주는 구조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연소득 4,500만원 이상부터는 1억원 고소득자라도 기본소득공제 비율이 똑같다"며 고소득자 소득공제를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④ 학력차별금지법 도입- 이력서 학력란 삭제하고 승진차별 사라져야

과도한 사교육, 숨막히는 입시경쟁,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 등 국내 교육계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본 뿌리는 우리 사회의 학력차별이다. 학력차별금지법이 다소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고, 실효성이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들 수 있지만 직장 내 성희롱 금지법(남녀고용평등법)이 직장문화를 바꿔놓은 것처럼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김창환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직장 내에서 학력 차별적인 발언을 하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2,000만원 이상의 벌금을 물리게 해야 한다"며 "일부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취업할 때 학력란을 없애고, 승진에서도 차별이 없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삼성그룹 고위직에 지방대 출신이 많이 포진돼 있는 등 기업은 능력을 보는 경향이 있지만 공무원 사회나 법조계는 특정 명문대 출신이 학연 인맥을 형성해 이를 통해 모든 문제를 풀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⑤ 화이트칼라·성범죄 무관용- 대기업 총수 감형 악습… 친고죄 폐지 바람직

법조계에 떠도는 일화 중에 벤처회사 간부가 "40억원 정도 횡령하면 얼마나 (징역을) 사느냐"고 변호사에게 문의한 후 "자수하고 전과가 없으면 약 5년 정도일 것"이라고 답하자, "그것밖에 안 사느냐"며 실제 범죄를 저지르고 횡령금과 가족을 해외로 빼돌린 사례가 있었다. 1990년 이후 국내 10대 재벌총수 중 7명은 모두 합쳐 23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지만, 모?집행유예로 풀려 나와 전혀 실형을 살지 않았다는 통계도 있다.

노회찬 의원은 과거 법원 국정감사에서 "대기업 총수들에게는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가 있다'며 형량을 깎아주는데, 근로자는 국가 경제에 이바지해서 깎아준 경우 있느냐"고 비판한 적이 있다.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주가조작 등 화이트칼라 범죄가 상대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형량이 낮다"며 "법적으로 판사가 정하는 형량범위를 제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성범죄는 강력범죄인데도 피해자가 고소를 해야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여서 93%가 처벌을 안 받는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도입됐다는 성범죄 친고죄는 가해자 보호장치로 변질됐다. 피해자가 합의와 고소취하를 강요당하며 2차 피해를 당하고, 이 때문에 고소율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는 "친고죄는 성폭력 범죄를 개인화시키고 축소시키는 것"이라며 "유엔에서도 2007, 2011년 두 차례 친고죄 폐지를 권고했다"고 말했다.

● 설문 참여 전문가 21명

김갑배 변호사(전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김승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실장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창환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나임윤경 연세대 대학원 문화학과 교수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박주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정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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