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도 취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것은 기본이죠. 입장을 막으면 폭력까지 휘두른다니까요."
7일 밤 서울 명륜동 대학로 연극거리에서 만난 극장 매표소 직원 김모(24)씨는 취객들의 행패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낮에는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 앞에서 홍보지를 나눠주고 저녁 무렵에는 매표소 앞에서 손님 입장을 돕는데 매일 취객들과 승강이를 벌이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혀가 꼬부라져 발음도 안 될 정도면서 돈 냈는데 입장을 막는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때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관객은 왕'이니 참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입구에서 취객을 찾아내 걸러내지 못해 공연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다. A극장 관계자 정모(53)씨는 "얼굴에 표시가 나지 않아 입장을 시켰는데 취객이 뮤지컬 공연 도중 갑자기 무대 위에 뛰어 올라가 춤을 추는 일도 있었다"며 "공연을 망칠까 함부로 끌어내리지도 못하고 관람객 참여 유도인 것처럼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회식 때 연극을 관람하는 문화가 생기다 보니 반주 후 단체 입장하는 관람객 중에 꼭 사고를 내는 이가 생긴다는 게 공연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만취한 사람만 입장을 막기가 곤란해 눈감아 주면 열에 아홉은 탈이 생긴다는 것이다. 소극장은 작은 소음도 연극공연에 방해가 되는데 입장하자마자 코를 골며 자거나 화장실에 간다며 수시로 들락거리는 일까지. 어쩌다 주의를 주기라도 하면 소란은 더 커진다. B극장 관계자 이모(35)씨는 "지난달 27일 취한 관람객에 조용히 해달라고 했더니 본인이 이 극장을 들어다 놨다 할 수 있는데 건방지게 충고한다고 언성을 높였다"며 "한 달에 3, 4번은 꼭 취객으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고 빗나간 관람문화를 털어놓았다. 그는 "더 억울 한 것은 손님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휘둘러도 자제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정대경 한국소극장협회 이사는 "취객이 행패를 부려 직원들이 다치거나 관람객들에 폐를 끼치는 등 피해가 속출하는데도 공연장 이미지가 나빠질까 유야무야 넘어가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대학로 일대 극장에서 술에 취해 행패를 부렸다가는 큰 코 다칠 전망이다. 그 동안 취객행패 탓에 몸살을 앓아온 연극 및 극장 관계자들의 모임인 한국소극장협회와 서울 혜화경찰서가 대학로 공연장 일대의 음주폭력에 칼을 빼 들었기 때문이다. 경찰과 한국소극장협회는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 극장마다 신속하게 신고할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을 정비하고 신고 접수 시 즉시 출동해 음주폭력 및 행패에 대해 법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키로 했다. 또 음주폭력 근절을 위해 극장 176개소에 포스터를 부착하는 등 캠페인도 실시한다. 경찰 관계자는 "취했으니 한번 봐주고 넘어가는 식의 처리는 더 이상 없다"며 "나아가 음주폭력 예방을 포함해 건전한 공연관람 문화를 정착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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