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치러진 프랑스 대선에서는 프랑수아 미테랑 이후 17년 만에 좌파가 승리했다. 그러나 신임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는 소속 정당인 사회당에서 중도파로 분류된다. 그의 정치적 지향이 기본적으로 좌파인 것은 맞지만 산적한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우파와 머리를 맞대며 유연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자문위원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좌우 합의로 탄생한 중도 세력이 아직 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좌우를 절충해 나온 중도 입장이 여전히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뜻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우파연정은 영미식 자본주의의 탐욕을 비판하며 복지 증진, 기업규제 강화 등 사회주의적 정책을 도입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따뜻한 보수'를 표방하며 환경과 육아 등 보수당이 소홀했던 사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독일, 영국, 스웨덴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를 합한 지지율은 여전히 60%를 넘고 있다.
물론 재정위기로 중도의 기반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그리스는 말할 것도 없고 비교적 여유 있는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캐머런 총리는 지난달 여론조사에서 2010년 취임 이후 최저치인 지지율 31%를 기록하며 야당인 노동당 당수 에드 밀리밴드에게 뒤졌다. 메르켈 총리의 기민당은 지난달 지방선거에서 당 역사상 최저 득표율로 야당인 사민당에 참패했다. 재정위기 해법으로 긴축을 주장한 메르켈이 부채의 점진적 감축을 내세운 사민당 지역 지도자 하넬로레 크라프트에게 패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현 중도정권이 재정위기 해결에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반대파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장석준 위원은 이를 "중도에 대한 합의가 붕괴된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대공황 당시 좌우가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라는 중도지대에서 합의했다면, 현 재정위기에서는 그 같은 중도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 위원은 "전통적으로 중도세력이 득세한 유럽이지만 지금처럼 무능한 모습을 보인다면 극단주의가 득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그리스처럼 벼랑 끝에 몰린 나라나 중도 정치의 전통이 짧은 나라일수록 전복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재정위기에 답을 제시할 새로운 중도라는 난제 앞에,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가능성 있는 인물은 올랑드 대통령이다. 부자증세, 정년연장 등 강력한 좌파 공약을 내세워 당선된 올랑드는 지난달 30일 공기업 사장의 연봉을 최고 68% 삭감하는 과감한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올랑드가 주목 받는 이유는 그가 과시하는 진보색 때문이 아니다. 외신들은 일제히 올랑드가 유럽 재정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메르켈 총리와 각을 세우기보다 적절한 선에서 타협할 것'으로 예상했다. 양측이 각기 다른 진영에 서 있지만 기본적으로 실용주의자이기 때문에 이념보다는 실질적 문제 해결에 집중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올랑드의 파격적인 부자증세안(연소득 100만유로 이상 부유층에게 소득세율 75%를 적용하는)에 대해 "좌파임을 인식시키려는 상징적 행보일 수 있다"며 "극소수의 최상위층 때리기로 좌우의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것"이라고 평했다. 김 교수는 "올랑드가 새로운 중도의 지평을 열만큼 혁신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한계에 부딪힌 유럽 중도 세력에 도전하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성 있는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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